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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하나님의 징계 (2) 목사님 설교 읽기

20. 3-22 (요엘 2)

 

 

코로나와 하나님의 징계 (2)

(“왜 잘 살아야 되는데?”)

1:5-12 세상부귀 안일함

 

 

우리 기독교가 언제부터 생명을 잃어져 갔는가?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부시대부터라고 생각한다. 교부들이 스콜라철학을 신학에 도입을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의 삶의 실재이고 실존인데, 이것을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기를 시작했어요. 예수님의 구원이 하나의 교리화 되고 이론화되기 시작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단어의 개념은 우리의 삶의 실재에 대한 설명인데, 실존보다는 이론으로 설명되기 시작하면서 생명을 잃어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이런 걸 가지고, 죄는 원죄가 있고 자범죄가 있다고 설명도 하고, 때로는 설교를 하면서 그 죄에 대한 지적을 할 때에도, 종교적인 규범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강조를 합니다. 가령 주일날이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교회의 규례이지요. 이것을 어기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그리고 사망의 권세아래 있게 된다. 이렇게 설명을 해요. 또 국법을 어기는 것, 도둑질하지 말라. 사기 치지 말라. 이런 것을 죄인 줄 알아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한다할 때에도 그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남들보다 더 잘 살고, 남들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즐거움에 사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스스로 생각을 해 버린다고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한 실존적으로 죄를 말할 때, 그 죄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대항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말해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나, 사망의 권세아래 있는 것이 뭐냐면, 우리의 삶에 샬롬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천국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샬롬인데 그 샬롬이 없어지는 것이 뭐냐면, 억압아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범죄하고 난 이후 인간 세상에는 억압이 존재해요. 어떤 억압이 있는가? 하면, 첫째 정치적인 억압이 있어요.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고 국민이나 약한 사람을 억압하는 거예요. 그럴 때에는 사람들은 힘이 무서워서 어느 정도 복종을 합니다. 그랬다가 ! 이거 도저히 못 살겠다생각하면, 저항을 해요. 그런 저항이 뭐냐면 민란 이런 것들이에요. 그래서 그 억압의 사슬에서 스스로 헤어 나오려고 그래요.

둘째 경제적인 억압도 있습니다.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회사를 운영하면서 직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억압입니다. 예전에는 정말 우리나라 경제가 어렵잖아요. 잘 먹고 잘 살자고 저임금에 과중한 노동을 하면서 살았는데, “! 이거 도저히 이렇게 살기에는 너무나 힘이 든다.” 왜 사장만 잘 먹고 잘 살아?” 이러면 저항이 일어나요. 그 저항이 노동운동, 파업 이런 것들입니다. 지금은 귀족 노동자들이 생겨날 만큼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억압 중에 제일 큰 문제가 뭐냐면, 종교적인 억압이예요. 종교적인 억압은 당하면 당할수록 더 복종하게 되고요. 그 억압에서 헤어 나올 노력을 하지 아니하고, 당연시하고, 운명적으로 받아드려요. 그런 것들이 지금 신천지나 이단들 속에 나타나는 거예요. 이단의 빠지게 되면, 종교적인 억압에 빠지게 되면 그 교주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하면서, 천륜을 거스리고 인류를 거스리는 것까지도 복종을 하면서 헤어 나오려고 하지 않아요. 건져내려고 하면 오히려 저항을 한다고요. 그래서 이 종교적인 억압이 참! 문제인데, 이런 종교적인 억압이 이단에게만 많이 있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모든 종교에도 있고, 죽은 기독교 안에도 있다. 이 말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정치적인 억압이나 경제적인 억압은 종교적인 억압에서 풀려나게 되면 자동적으로 정치적인 억압이나 종교적인 억압에서도 풀려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지니라고 말씀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는 예수님을 말씀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하게 한 것이 구원인데, 어디에서 자유하게 하셨는가? 구약성경을 잘못 해석해서 죽은 종교가 된 유대교의 억압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종교적인 억압아래에 있는 그들에게, 제사장이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의해서 억압아래에 있는 그들에게, 자유하게 된 에클레시아, 교회를 만드신 거예요.

그래서 초대 교회 안에는 경제적인 억압도 사라져서, 가지고 있는 자들이 사도들의 발 앞에 자기의 재산을 갖다 놓음으로 말미암아 핍절함이 없는 그런 아름다운 하나님의 샬롬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말입니다.

이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삶이 실존적으로 나타났는데, 교부 시대에 와서 이런 것을 자꾸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려고 하고, 교리화 시키면서, 이런 구원의 삶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거야.

 

오늘도 여러분들이 코로나를 하나님의 징계라고 제가 두 번째로 말씀을 드렸는데, 요엘서에 보면, 그렇게 말씀 하는 거예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참새 한마리가 땅에 떨어짐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되지 아니하며,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신 하나님이, 오늘 코로나 19가 일어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 뜻을 잘 잘 알지 못하고, 이단과 같이 잘못 해석해 버리면, 성경을 가지고 또 다른 억압이 일어나게 한단 말입니다.

 

그 재앙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요엘 시대에 전무후무한, 오늘 본문에서 그러잖아요. 이전에도 없었고 이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환란, 그 환란이 뭐냐면, 메뚜기의 재앙이 임하였다고 그럴 때, 요엘이 뭐냐고 이야기하는 가하면, 1장에서 이 재앙에서 어느 누구도 피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거기에 보면, 늙은이들, 경륜이 많은 어른들도, 삶의 경험이 많은 자도 피할 길이 없다. 그래서 잘 들으라고 하고, 그리고 취하는 자들, 취하는 자들이 뭐냐면 포도주에 취한 자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살맛나는 사람들도 깨어 울어라는 거예요. 이 재앙에서 너희가 피하지 못한다. 그리고 11절에 가면 농부들아 부끄러워할지어다. 경제 활동을 하는 경제인들아 부끄러워해라. 너희가 열심히 농사짓는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13절에 제사장들아 굵은 배를 동이고 울어라.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들아 그렇게 하라.

제사장들까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재앙에서 피할 길이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이, 로마서 323절에 나오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실존을 말씀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단들은 뭐라고 하는가? “우리한테 오면 그 재앙을 피할 수 있어!” 이런다고요. 여러분, 이 말이 먹혀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줘야 돼요. 여러분들이 이런 걸 알면, 앞으로 이단들이 잘못된 말이나 설교마저... 복음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줄 알게 된다고요. 영분별을 올바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동안에 여러분들이 믿어왔던 신앙을 내려놓고요. 이런 관점에서 한번 보시라고요.

신천지에서 6개월 동안 교육을 해서 세뇌를 시킨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네들에게 오면 피할 수 있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주입하기 위해서 공포심을 심어 주는 거예요.

정신 분석 학자들이 인간의 공포심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여러분, 인문학자나 그런 분들은 현상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잘해요. 세 가지래요.

첫째는 지식이 부족할 때, 사람은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는 거예요. 이단의 신천지에 세뇌가 뭐냐면, 성경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포심이 생기게 하는 거예요. 왜 부족 했는가? 기성교회에서 성경을 복음적으로 잘 가르치지 못하니까, 이단이 말하는 성경공부에 넘어가 겁을 내게 하는 말에 넘어가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과 공포심이 생기는 것은 잘못 가르치는 거예요. 복음은 기쁜 소식이에요. 기쁜 소식을 듣는데 공포심이 생깁니까?

이단 신천지는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설교를 많이 하고, 이단들은 대부분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촌놈 겁주듯이 겁을 줘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를 믿으면, 설교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야 해요! 이런 것을 아셔야 해요.

 

그리고 또 어떻게 해서 공포를 느끼게 되는 가하면, 불안할 때 공포심을 가지게 되요. 그래서 멀쩡한 사람에게도 자꾸 불안감을 조성한다고요. 6개월 동안 신천지에서 하는 일이 그런 일이예요. 어떻게 불안하게 되는가? 닥치지 않는 미래를 땡겨서 생각하게 하는 거예요. 4월 총선에도 좌파 우파 전부, 국민들을 자기 논리로 불안하게 만들어 공포심을 가지게 하면, 자기들에게 표를 찍거든요. 사람은 미래가 어찌 될지 몰라요. 그런데도 너 그러면... 하고 미래를 예측하면서 불안을 조성하는 것이예요. 정통 교회에서도 그러면 안 돼요.

 

그리고 세 번째로 관계의 단절에서 공포심을 느낀다고요. 이단들은 사람들에게공포심을 심어 주기 위하여 부모로부터도 떼어 놓아요. 왜 떼어 놓는지 아세요? 그런 걸 가지고 자꾸 뭐, 천륜 인륜적인 것으로 접근을 하는 것은 사단의 전략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모르는가? 정신과 분석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부모로부터 떼어놔야, 아이가 공포심을 가지게 되고, 그 공포심이 일어나야 만이, 말도 아닌 말에 넘어가게 되고, 한번 넘어 가면 저항하지 아니하고, 그래서 이만희는 평화궁전을 지어서 잘 살면서, 신도들은 이만희를 쫓아다니면서 온갖 짓을 다 해가지고 헌금하는 경제적인 억압이 일어나지요. 또 그 안에서 정치적인 억압도 일어나지요. 그런 억압이 이단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통교회에도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유하게 되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오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 피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다음 주 설립주일 지나고, 그 다음 주 코로나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세 번째 말씀에서 말씀을 드릴 텐데, 오늘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 아래 있다.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제가 말씀드렸지요. 1세기에 로마제국이 파르티안 제국의 침략으로 인하여 기근과 고통, 사망이 엄습해 올 때에 배교자들이 생겨난 거야. 황제숭배로 인하여 기독교를 억압 할 때에, 복음이 실재화되지 않는 죽은 기독교가 될 때 일어난 재앙을 적황색말, 청황색말, 등 인봉한 것을 뗄 때마다 재앙이 일어난 것을 상징과 암호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 억압의 시대에 복음을 전할 때에 상징과 암호가 아니면 더 이상 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다 통용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는 다 아는 상징과 암호로 복을 전한 것예요.

615절에 임금도 못 피한다. 왕족도 못 피한다. 귀족도 못 피 한다. 자유인도 못 피한다. 부자도 못 피한다. 노예도 못 피한다는 거예요. 어디에 숨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예수를 믿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세상에서 피할 길이 없다는 걸 아셔야 돼요. “우리 교회에 오면 암도 낫아” “우리 교회에 오면 복 받게 돼이러면 신천지하고 같은 말을 것이에요. 이 세상은 그 어디에도 피할 길이 없는 세상이예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징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무엇에 대한 징계냐? 이 말입니다. 종교적인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 일부 목사님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종교적인 규율을 지킨다고 주일날이기 때문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 규율을 지키는 것을 신앙의 억압에 저항하는 거라 생각한다고요. 그런 것은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에요. 정확하게 복음을 아셔야 돼요.

하나님의 징계는 종교적인 규율을 어기는 거나, 국법을 어기는 거나, 이런 게 아니에요. 우상숭배에 대한 징계예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 되는데, 우상을 섬기며 살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뭔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 뭔가를 알아야 된다고요.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우상숭배가 뭔가?’에 대해서 말씀 드릴 거예요. 제가 우리 교회에서 그렇게 닳도록 이야기해도 못 알아들어요. 머리 아파요!

여러분 코로나 19에 걸려서 열이 나면 해열제 먹는 게 아니에요.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아야 된다고요.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는 백신을 계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운 거잖아요. 우상숭배, 사망의 권세 아래 있다고 할 때에, 우상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지요. 예수는 우상숭배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에요.

코로나에 걸렸는데, 해열제 주듯이 하는 것이 뭐냐면 이런 거예요. “절에 가서 부처에게 절하지 마” “제사상에 절하지 마하는 것은 해열제 주는 거예요. 부처에게 절하는 것이 뭐야? 왜 그것이 우상숭배인지? 제사를 드리는 게 왜 우상숭배인지? 등산을 하다가 돌탑 쌓은데 돌을 얹으면서 기도하는 게 왜 우상숭배인지? 알아야 바이러스를 잡는 거에요.

그런 것은 예수님을 통한 신앙체계를 알 때 알 수 있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런 바이러스를 잡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억압에서 풀려나서 자유하게 되는 그 삶을 살아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상숭배에 대해서 그 동안 제가 뭐라 그랬어요!

우리 인간은 누구에게나 신 인식이 있다. 그랬잖아요? 기억나지요? 동물하고 사람의 차이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가? 말을 할 줄 아는가? 이런 것이 아니에요. 원숭이도 도구를 사용해요. 원숭이 뼈 있는 곳에 구석기 시대의 도구가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도구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로 동물이냐, 사람이냐 구분하는 것은 사회학적으로는 말하는 거에요. 언어도 마찬가지예요. 돌고래도 휘파람으로 의사소통하잖아요. 물고기도...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신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예요. 우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라고 할 때에도 올바른 그리스도 구원의 실존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은 이 사람이 신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평가하는 거예요.

신이 어디 있어! 내 주먹을 믿어라.”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동물이라는 거에요. 예전에 목사님들이 우리 하나님은 누구나 다 믿는다고 하면서, 옛날에 스님이 얼은 대동강을 건너갈 때 목탁을 두드면서 나무아미타불하고 가다가 얼음이 찌지직 하자, 어이쿠! 하나님! 했다고 하면서, 스님도 급하면 하나님 찾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진짜지라고 하는 그건 하나님이 아니에요.

오늘도 교인들 중에서도 하나님 이름 부르고, 예수님 이름 부르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을 믿는 건 줄 알아요? 그럴지라도 우상을 믿는 것일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 우상, 예수 우상을 믿는 것일 수 있어요. 우상숭배 바이러스를 모르기 때문에 이단이 판을 치는 겁니다. 신 인식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성이예요. 타락한 인간에게 신 인식이 어그러진 거예요. 그게 타락이예요.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또 하나가 뭐냐면, 자기 주장이예요.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주장이 있고, 원하는 게 있어요. 우리의 생명이 쇠진해지는, 늙어갈수록 원하는 게 적어지잖아요. 생명력이 줄어드는 거예요. 어린 아이 때는 대통령도 되고 싶다가, 되고 싶은 게 많잖아요?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있다는 증거에요.

 

범죄한 인간,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간은, 신 인식이 어그러지고, 자기의 주장이 있는 거예요. 이 둘이 합일을 이루면 종교가 되요. 합일을 이루는 종교라는 것이 뭐냐면, 인간의 자기주장을 종교적인 행위,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에게 인식된 신의 능력을 빌려 이루려고 하는 것이 종교예요.

불교도 사실은 종교가 아니고, 유교도 종교가 아니었는데, 인간이 우상숭배로 만들어버린 것이고, 유대교도 우상숭배로 만든 것이고요. 천주교도 그렇고, 요즘 개신교에서도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어요.

 

여러분 이런 부분이 있잖아요. 사업이 잘 되고 싶은 자기주장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종교적인 행위, 새벽 기도, 열흘 금식기도,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종교적인 행위잖아요. 그 행위를 통해서 자기주장,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기가 인식된 신... 부처에게 신을 인식한 사람은 부처에게 가서 그렇게 빌어요. 삼천 배를 하고... 무당에게 신이 인식 된 사람은 무당에게 가서 굿하면서 빌어요. 하나님이라는 글자와 예수라는 글자에게 신 인식이 된 사람은 하나님, 예수님 부르면서 자기의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고 해요. 이게 우상숭배의 신앙 체계예요.

반면에 하나님의 신앙체계, 야훼 신앙 체계가 뭐냐? 하는 걸 알아야 돼.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자기주장, 자기의 원함이 사라져요. 진짜 하나님을 만나면 그렇게 돼요.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는 가하면, 나를 따라오려거든... 내가 계시한 하나님 너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정말 네가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해요. 내가 원하는 것을 부인해라. 자녀 잘 되고 싶은 것 부인해라. 부자 되고 싶은 것을 부인해라. 남들에게 내 체면을 차리려는 것을 부인해라. 그리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는 거에요.

이 사람이 하나님 만났는가? 아닌가는 뭐로 보는 거냐? 맨날 하나님, 할렐루야! 하는 거로 아는 게 아니고요. 자기를 부인하느냐 ,안 하느냐는 걸 가지고 알아요.

이걸 제가 여러분들에게 설교 했지요? 여러분이 부모님의 얼굴 인식을 통해서 부모님을 아는 건 아는 게 아니에요. 엄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어머니를 아는 것이지요.

어떻게 아는가? 엄마가 나를 존재하게 했구나! 이런 인식에서부터 엄마를 알기 시작하는 거예요. 성경을 보면서 여러분이 조직신학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체계를 잡는 게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니예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이 나와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존재하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구나! 아는 것이고, 그리고 나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존재하게 한 부모님이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멋진 부모가 아니고 세상에 나가면 부끄러운 그런 연약한 부모이지만 나를 천하하고도 바꾸지 못하는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부모님을 아는 거에요. 오늘 내가 이렇게 존재한 것은, 내가 오늘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내 어머니 아버지가 받을 자격이 없는 나를 낳은 자이기 때문에 베풀어 준 사랑이라는 그것을 아는 것이 부모를 아는 거예요.

미찬가지로, 내가 기도 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는 것으로 하나님 아는 것은 부처하고 하나님을 구분하는 인식의 구분만 있는 거야. 로마에서 처절히 처형을 당한 예수! 정말 못난 모습의 신이지만, 우상에 비해서 화려함이라 것은 전혀 없지만, 그 신이 나를 존재하게 해서 자기 아들과도 바꾸지 않는 생명을 주셨구나! 온 천하보다도 나를 귀하게 여겼구나! 이걸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거예요.

 

야다라는 히브리어가 안다는 것인데요. 연합한다는 의미에요. 그렇게 하나님과 연합이 되는 순간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옛날에 그렇게도 귀하고 좋던 것들이 값없이 되어져요.

옛날에는 엄마! 낳았으면 그것 하나 사 주지. 그것도 못 사 줄 것이면서 낳아 가지고 뭐 하느냐고...” 그래서 친구들에게 기죽게 하느냐고 이렇게 했던 아들이 엄마의 본질을 알고 나면, 엄마가 그런 것을 사 주려 해도, “엄마 나 필요 없어! 우리 엄마가 제일이예요.” 이렇게 변한다고요. 그때부터 그 아이에게는 자신을 얽어메던 세상의 많은 것들에서 자유가 일어나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해요. 세상이 주는 평안하곤 달라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를 창조했다면서, “하나님이 암 하나도 못 고쳐?” “우리를 창조했다면서, 하나님! 내 사업하나 못 일으켜 줘?” 이랬던 그 인간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계시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면, 그런 것이 시시하게 보여져요. 하나님 한분만 자랑하게 돼요. 휘황찬란한 우상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정말 초라한, 로마에 의해서 처절히, 유대교에 의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그런 죽음의 예수님을 통하여 신을 인식하게 되면, 그런 것들과 주님과 바꿀 수 없다. 세상의 부귀도, 권력도, 명예도 그때부터 시시하게 여겨져요. 자기에게나, 신천지에게나 메이지 않게 돼요. 내가 만든 하나님이라는 신에 메이지 않게 되요. 내가 만든 예수라는 신에게 메이지 않게 되요.

 

그럴 때에 사람을 무시하지 않아요. 힘이 있는 사람 앞에서 정치적인 자유가 일어나요. 돈이 있다고 없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아요. 경제적인 자유인 나눔이 일어나요.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는 샬롬이 일어나요. 이것이 우상숭배를 배격하는 이유에요. 이게 코로나를 잡는 백신이예요.

 

예수 믿고 부자가 되었다. 나도 저 사람같이 믿어서 부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해열제에요. 더 큰 병을 일으켜요. 죽음의 병을 일으켜요. 코로나 19를 백신으로 안 잡고, 해열제를 먹는 잘못하는 순간 죽어요. 예수를 믿어도, 맨날 우상숭배적 신앙체계로 해열제를 먹는 순간, 카타크리노멘, 하나님에게 영원히 유기당할 수 있어요.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 진리가 자유케 함을 누리지도 못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24절에 이렇게 말해요. 여러분 부흥 강사들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사탄에 자녀들에요. “아이고, 김종웅 목사 같은 설교를 믿으려면 믿으라고 하면서 자신은 누이 좋고 매부 좋듯이, 이 땅에서도 부자로 살고 천국가면 얼마나 좋은 거냐!”고 하는 부흥사들이 있는데, 사탄의 속삭임이예요.

마태복음 624절에, 예수님이 그런 그들에게 뭐라 하는 줄 아세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못 섬긴다.” 부모님보다 스마트 폰이 좋게 보이고, 메이커 신발이 좋게 보이는데, 부모님을 섬길 수 없어요. “낳아놓고 뭐 하세요?” 그런 사람들에게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삼기는 물신주의가 교회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 믿어요. 건강하기 위해서 예수 믿어요. 그래서 은혜의 강 같은 교회, 이단 때려잡는다고 하면서 이단 짓하는 교회가 생겨나는 거예요.

진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죽음에서도 자유하게 돼요. 암에 걸려도 나아도 하나님에게 감사! 안 나아도 더 감사! 가난하게 되었을 때 가난해도 감사! 부유해도 감사! 더 이상 가난하고 부유함이 나를 얽어매고 불행하게 하는 것에서 자유하게 되어져요.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려면 우상숭배 신앙 체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백신으로 파괴해야 돼요. 우상숭배적 신앙체계를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에게 갖다 붙이는 해열제가 난무하는 현실이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언제 세상을 심판 했는가?”

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됐는가?”

왜 요엘시대에 모든 자들이 메뚜기 재앙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는가?”

왜 우리나라가 코로나 19, 전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는가?”

교회가 깨달아야 해요. 성경에 근거해서 깨달아야 해요. 여러분 이것을 깨달아야 돼요. 회개가 뭔지 알아야 되요.

왜 그랬는가?

크게 부르짖으라. 그러면 응답한다.” “받을 때까지 구해라.” 라고 하는 것은 전부 종교인들이 성경을 왜곡 해석해서 여러분들을 얽어매게 한 거예요.

성경 시편 9:12절에는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시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하십니다. 금식하는 자의 기도를 잊지 않는 게 아니고요.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한다고 해요.

신명기에는 뭐라는 줄 아세요? 신명기 강해할 때 다 했잖아요? 여러분들이 마음에 안 담아서 그렇지...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후에 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함으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너에게 죄가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왜 코로나 19로 인하여 이런 난리가 난 줄 아세요? 문재인 때문이라고요? 트럼프와 시진핑 아베 때문이에요. 가난한 자들이 호소 할 데 없어서 하나님께 호소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미국 때문에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요. 김정은에게서 지켜 준다면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방위비를 요구해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골머리 아픈 정부 관계자들이라 봐요. 고고도 미사일이 왜 우리에게 필요해요? 미국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이지요.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방사포잖아요. 그리고 시진핑도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어 힘에 눌려 설치했는데, 그거 했다고 우리 무역을 막고 하니, 우리는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호소할 수밖에 없잔아요. 약한 우리가 하나님에게 호소하자. 코로나 19사태가 난 것이에요.

오늘의 코로나 19는 트럼프, 시진핑, 아베 때문이라 봐요. 약소국가가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 호소할 수밖에 없으니까, 코로나19가 온 거예요. 여러분 이러한 인식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세계가 좋은 세계가 되지요. 이런 회개가 일어나야 돼요.

 

여러분 옛날 미국은 안 그랬어요. 일본의 길과 독일에 길은 너무나 달라요. 요한계시록에 말한 대로 중국은 코로나 19에서 안전 했습니까? 미국은 안전해요? 일본은 안전해요? 누구도 피할 길이 없어요. 신천지 간다고 안전해요? 우리 교회에 다닌다고 안전해요? 누구도 피할 길이 없어요.

 

국제 정세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왜 신천지가 의해서 이 난리가 나게 되었어요? 신천지 그것들은 그렇더라도, 우리나라가, 교회가 가난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했기 때문이에요. 이제 정치인도 못 믿고, 종교인도, 제사장도 누구도 못 믿고,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어찌 합니까?” 힘이 없는 자들의 이 소리가 하나님께 들린 거예요.

이제는 우리가 물신주의에서 벗어나고, 우리를 창조한 참된 하나님을 만남으로 우상 신앙체계가 무너짐으로 말미암아, 없는 사람도 기죽지 아니하고요. 약한 나라도 강대국의 눈치 안 보고요. 이런 복음의 가치가 있는 세계가 되고 국가가 되는 것이 중요해요.

코로나는 백신으로 인하여 잡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위기극복 밖에 안 돼요. 전화위복이 되어야지요. 성경은 죽음을 피하는 위기 극복이 아니고요, 전화위복이예요.

고난당하기 전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당한 이후에 주의 율례와 규례를 배웠나이다. 그 고난이 나에게 유익이 되는 삶, 코로나 19가 극복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코로나 19가 인류에게 유익이 되는 삶, 그게 복음이예요. 우리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45일까지 셧다운 함으로 코로나 19를 사라지게 하는 것, 그게 복음이 아니고요. 코로나 19 이후에 대한민국이, 없는 사람도 숨 쉬는 나라가 되었네. 요엘서 주제가 그거예요.

 

우리가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 복음적인 카이로스적인 시각이 없어서 이 나라가 이렇게 갈등을 하는 거예요. 그런 것도 목사들이 올바른 신학이 없어서, 지금 이만희 같이 무식하니까, 이걸 못 보는 거예요.

제가 이야기하잖아요? 진영논리의 문제는 선악의 분별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영 논리가 사람에게 세팅 되면 우리 편은 선이고. 상대는 악하다는 거야. 요즘 목사들 보면 머리 아파요. 전부 말하는 거 보면 진영논리예요. 여러분 카이로스를 아셔야 돼요. 왜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가?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 패는 박정희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잘 살 수 있나?” 진영논리의 시각으로 보는 거야. “박정희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법살인이 일어나고 인권이 말살 당했나?” 하는 사람도 전부 진영논리를 보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것에서 벗어나는 게 뭔가? 하나님의 뜻은요? 하나님은 만사에 기한과 때가 있다고 그랬어요. 박정희 시대의 시대정신은 잘 살아보세였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때는 박정희의 방향이 옳았어요. 잘 살아보세 했어야 돼요.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누구든지, 여러분 못 먹으면 죽어요. 사람이 죽는 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하나는 못 먹어서 영양실조로 죽고요. 그게 암이예요. 하나는 모든 사람이 폐렴으로 죽어요. 숨을 못 쉬어서 죽어요. 사람이 먹기만 하고 숨만 쉬면 사람은 살아요.

그래서 사람 사는 데에 먹고 마시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성경은 그걸 부정 안 해요. 박정희 시대에는 먹는 게 없어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거기에 인권이 뭐 있고, 할렐루야 놀렐루야가 어디 있어요. 교회마저도 하나님 믿고 우리 잘 살아 보자, 하는 것이 시대정신이었지요. 잘 살아 보자예요. 그래서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재인의 시대정신은 잘 살아보세가 아니에요. 그렇게 하는 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거예요. 지금 목사들이 보수도 아니고 수구지요. 지금도 더 잘 살아보세 하는 것은 시계를 거꾸로 박정희 시대로 돌리는 거야. 지금은 디모데전서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왜 그렇게 잘 살려고 했던가?” 이 질문이 교회 안에 있어야 돼요. 왜 잘 살아야 되는데 시대에 잘 살아보세의 시대정신을 갖다 붙이면 안 되고요. 잘 살아보세의 시대를 왜 잘 살아야 되는 데의 시대정신을 가지고 평가하면 안 돼요. 하나님은 박정희 시대에는 잘 살아보세요. 지금은 우리가 왜 살아야 되는데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코로나 19 같은 게 넘보지 못해요.

 

디모데전서에서 말씀하잖아요. 먹을 것이 있고 마실 것이 있은즉 자족하는 것이 경건에 유익하다. 지금은 자족할 줄 알아야 돼요. 오늘 아침에도 어떤 목사가 교회에서 받은 것을 자랑해서, 내가 그랬어. 쓴 만큼만 내 돈이야 오늘 못 쓴 돈 평생 못 쓴 거야. 누가 쓸 수 있어? 나중에 죽을 때 아이고 하고 죽지 마!” 지금은요. 왜 잘 살아야 되는지?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생각해야 하는 시대예요.

박정희 시절에는 쉬는 것도 일하기 위해서 쉬어야 돼요. 그러나 문재인 시대에는 일하는 것도 쉬기 위해서 일해야 되요. 이러한 카이로스를 모르고 목사들이 이편저편 나누고 있으니까, 교인들에게 뭘 기대하겠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 그랬어요.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목사들 부한 자들에게

마음을 높이게 하지 마!”

시진핑, 아베, 트럼프 건방 떨지 마!”

우리나라 국민들 돈 있다고 건방 떨지 마!”

너도 코로나 19 피할 수 없는 재앙이야.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해야 해요.

제가 살아 보니깐요. 만 원을 못 쓴 사람은 100만 원도 못 쓰더라. 교회 100만 원 벌 때 십일조 10만 원 못 하는 사람은 1,000만 원 줘도 못 해요. 절대로 100만 원 십일조 못해요. 제가 경험한 것이예요.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그 다음에 뭐라는 줄 아세요?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 해요.

코로나 19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부한 자들에게 경고하고, 사람들에게 정함이 없는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게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 하게 하고, 너그러운 자가 되도록 그렇게 회개하게 해야 돼요.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은 똑같은 전범국이었어요. 성경을 믿었던 독일도 2차 세계대전 일으켰어요. 지난주 이야기했지만 1차 세계대전의 전쟁배상금에 허덕이는 그들에게 교회가 하나님 믿으면 끝내 줘!” “하나님은 우리 독일 민족 게르만 민족을 사랑하신다.”는 말을 성경이라 믿게 한 그들이었기 때문에 하이 히틀러!’가 먹힌 것입니다. 히틀러가 전쟁배상금 안 내게 해 줄게. 할 때 박수 쳤던 거에요!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으로 군국주의로 대동아 평화를 기치로 내 걸고 전쟁 일으켰어요. 그 이후에 길은 너무나 달라요. 독일은 우리가 성경 잘못 봤구나! 나누어 주기를 즐겨 해야 되고 너그러워야 되는데... 부한 자에게 마음을 주지 안 했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 정신이 동독과 서독을 하나 되게 한 거예요. 우리 한국에 그 마음이 교회 안에 있습니까? 똑같은 성경을 보고도, 우리는 하나님 믿어서 복 받았고, 하나님 안 믿은 북한은 저 고통을 당한다고 하지 않아요? 그런 생각이 2차 세계대전 일으켰던 독일이 보는 성경관이예요. 여러분 그래서 저항교육 생태교육을 한다고 지난주 이야기했지요?

오늘도 독일 보세요. 얼마 전에 유럽에서 가장 큰 문제가 난민 문제였어요. 시리아 난민들이 물밀듯이 밀려 왔어요. 그때 모든 유럽이 문을 닫을 때 독일은 국제기구에서 이,삽십 만 받으라고 이야기 했을 때 우리는 백만 명 받는다고 했어요. 실제로 백십 몇 만 받았어요. 그들을 받는 데 쓴 돈이 16조에요. 여러분 똑같은 성경을 보았는데요! 왜 그렇게 달라졌어요?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은 성경을 잘못 봤던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성경에 대해서 눈 씻고 보니까, 우상숭배의 신앙체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고 나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나니까, 그 돈을 기꺼이 지불해서 독일 경제의 밑바탕이 되고 있어요. 지금 누가 독일 경제를 바치는 근로자예요? 난민들이예요.

 

언젠가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스페인이 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던가? 조그만 땅덩어리를 가진 네덜란드가 왜 세계 일류 국가가 되었는가? 오늘의 미국이 왜 생겼는가? 말씀 드릴 거에요.

성경적 관점에서 볼 줄 알아야 돼요. 정신 차려야 되요. 대한민국 목사들부터...독일은 성경을 잘못 봐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어요. 우상숭배신앙이 야훼 신앙인 줄 알았다가,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고 나서 원하는 것이 없어지니까, 나눠주기를 즐겨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니까, 모든 유럽이 난민에 대해서 다 문 닫을 때 독일은 난민을 받았어요.

우리나라는 어때요? 통일 주체가 교회가 되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얼마나 부끄러운 거야. 제주도에 400명 예멘 난민이 왔어요. 저거 받아 줘서는 안 된다고 교회가 난리 치고, 국민이 난리 쳤지요. 그들 중에 한 명만 난민심사 통과 했어요. 박정희 시대 때 그랬으면 이해해요. 세계 경제 10대 대국에 들었다고 하면서...

 

오늘도 여러분 진짜 하나님 만나게 되면 내가 원하는 게 없어져요. 목사인 나도 살아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교회를 더 크게 하고 싶고, 더 많은 것으로 도와주는 멋진 목사가 되고 싶은 원함이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그게 부질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죽음에도 자유하게 돼요. 가난한 자 무시하지 않고, 있는 자에게 비굴해지지 않아요. 권력 없는 자를 무시하지 않고, 있는 자에게 대통령 앞에 가서도 비굴하지 않는 목사가 돼요.

 

오늘도 인간이 만든 우상인 하나님을 믿지 말고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한 그 하나님!!! 처절하게 처형당한 그 못난 하나님이 나를 존재하게 하시고, 나 때문에 십자가 달린 것을 알아서,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 삶! 세상 부귀 영광 쫓았던 그 죄를 회개하고, 오늘의 코로나 사태가 트럼프 시진핑 아베 때문인 줄 알아서, 약소국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밖에 부르짖을 수 없어서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작게는 이 땅에 큰 교회들이 하도 어께에 힘주니까, 작은 교회 목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하는 그 소리가 하늘에 닿은 거예요.

이 땅에서 아버지 잘못 만난 유리천장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 기댈 곳 없으니까, 하나님! 할 수밖에 없으니 코로나 온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