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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하나님의 징계 (1) 목사님 설교 읽기

   https://blog.naver.com/elimwon/221855753527


우리 목사님들의 단체 톡이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밴드에도 가입을 해서 여러 가지 좀 보기도 하는데, 계속해서 올라오는 유튜브의 가짜 뉴스가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제가 “유튜브의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말자”라고 올리지 말자라고 하니, 어떤 목사님이 또 올리기를 뭐라 하는가 하면, “지상파가 가짜 뉴스의 진원지가 아니냐? 지상파가 가짜 뉴스를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유튜브로 몰리는 것 아니냐?” 라고 해서, 제가 다시 답을 이렇게 썼습니다. “지금 신천지나 이단이 판을 치는 것은 정통교회의 설교가 가짜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지상파에 가짜뉴스가 많으니깐 유튜브가 활개를 치는 것이 맞다. 그래도 지상파는 방송 윤리 심의라는 규제를 받지 않나, 그러나 유튜브는 어떤 규제도 받지 않기 때문에 위험한 것 아니겠나? 마찬가지로 정통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도 가짜가 많으니깐 이단이 판을 치는데 그래도 정통교회의 설교는 교단이나 노회나 이런 데에서 복음에 의한, 성경에 의해서 규제를 받는데, 이단은 교주 마음대로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 아니겠나? 그래서 나는 유튜브보다 지상파를 보려고 한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코로나와 같은 이런 사태가 오면 가짜 설교들이 굉장히 많이 난무해요. 그래서 요엘서를 가지고 이 코로나 사태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계속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요엘 시대에 오늘 성경에 기록된 대로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 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 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이제까지 너희들 가운데 이런 일이 없었지 않느냐” 라는 말씀을 왜 하는가 하면, 4절에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과 먹고 느치과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라고 합니다. 이 메뚜기를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논에서 잡아서 도시락 반찬하던 메뚜기가 아니예요. 중동지역에서는 메뚜기가 한번 나타나면 하늘이 새까매져서 해가 어두워지고요.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는 녹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생명을 싹쓸이해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이 메뚜기 재앙입니다. 요엘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겁니다.

아마 지금의 코로나 사태도,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한 번도 이렇게 세계적으로 위기의식을 가졌던 적이 별로 없없던 것 같아요. 물론 1930년대에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지만,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그것보다 더 큰 재앙이 임하였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가? 이런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정상적인 복음 안에 있는가? 가짜인가? 하는 것을 올바로 판별해야 하는 겁니다.

 

요엘이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내린 징계다. 너희들이 회개하라”하는데, 이런 말씀도 요엘이 그냥 나타난 고난을 자기가 하나님의 징계라고 한 것이라면, 우리가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 요엘이 하는 말도 왜 믿어야 되는 가? 하는 것을 알아야, 이만희 교주가 “144,000명 안에 못 들어가” 하는 말이나, “너 가난하고, 너 자녀 취직 안 되고, 너에게 고통 있는 것 내 말 안 들어서 그런 것이야” 라고 하는 것과 같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말이 되기 때문에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통 교회에서도 이런 코로나 사태나 여러분들의 삶에 일어나는 고난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매 맞는다. 내 말 들어야지, 그러지 아니하면 이런 고난과 고통이 있어! 이렇게 해버리면 이단이나 정통교회나 다 가짜라 이 말입니다.

 

요엘이 이렇게 말을 했을 때에도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요엘만 한 것이 아니고, 에스겔도 이렇게 말했어요? 에스겔 선지자도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말미암아 지금 전쟁이 일어나는 거야. 흉년으로 인하여 너희들에게 기근이 있는 거야. 사나운 짐승이 들끓고 있는 거야. 당대에 사나운 짐승이 들끓는 것은 오늘 날 치안의 부재로 인한 혼돈스러운 사태가 일어나는 거야. 이런 말이거든요. 그리고 전염병이 돌아서 재앙이 임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말합니다.

요엘도 그러고, 에스겔도 그러고, 또 요한도 요한계시록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인봉재앙, 대접재앙, 나팔재앙이 있잖아요? 7 가지 재앙에 대해서 말씀을 하거든요. 둘째 인을 떼니까, 붉은 말이 나타나서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죽임을 당하고 셋째 인봉을 떼니까, 검은 말이 나타나서 한 데나리온에 밀이 한 되요. 보리가 석 되라 하라는 말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황적색 말이 나타나서 인류의 4분의 1을 죽이는 일은 재앙이 일어난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가지고 성경을 모르는 가짜 설교들은 뭐라는가 하면, 말세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재앙으로 세상을 심판한다고 합니다. 그럴 때도 무턱대고 성경이라고 믿으면 안 됩니다. 그런 신앙은 이단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요한이 그런 말을 할 때에도 그 말의 근거가 어딘지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성경이니까 믿어라. 이렇게 해 버리면 이단이나 목사님들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믿으라고 하면 무턱대고 믿는 현상이 나타난다고요.

특히 신천지나 이단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 엄청난 재양에 대한 것을 말세에 일어나는 사건이고, 이 재앙에서 구원을 받으려면 내 말 들어야 돼. 그래야 144,000명 안에 들어가서 이 재앙을 피해. 이런다고요. 마찬가지로 정통 교회의 가짜 설교가 뭐냐면, 여러분들이 예수를 안 믿고 내 말을 안 들으면 여러분들에게 이런 재앙이 임해. 그럴 때 그렇게 말 하는 것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된다고요.

요한 계시록의 엄청난 재앙의 표현은, 그 시대가 기독교 박해 시대이었어요. 기독교 역사에 로마 10대 박해 시대라는 것이 있었는데, 네로 황제로부터 도미티안 황제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박해가 있었거든요.

복음이라는 것이 뭐냐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야 돼! 우상숭배 하면 안 돼!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말하겠지만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것이예요.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면 안 돼! 이런 말이거든요.

그리고 헬라어로 퀴리오스라는 말은 ‘주’라는 말인데, 로마 시대에는 황제가 퀴리오스였는데, 복음이라는 것이 뭐냐면, 황제가 퀴리오스가 아니고 예수님이 퀴리오스고, 하나님이 퀴리오스라고 선포하는 것이예요. 너희들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주인으로 섬기지 아니하고 황제를 섬기거나 돈을 섬기게 되면 이런 재앙이 있어! 라는 것이 요한 계시록인데,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면 당장 로마 황제에게 잡혀가서 순교를 당하니까, 요한은 에스겔이나 요엘이나 똑같은 설교를 상징과 암호로 말한 것입니다. 기독교 박해시대였기 때문에 요한 계시록은 복음을 상징과 암호로 말하면서 교인들에게 물신주의나 황제숭배에 빠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군사 독재라는 암울한 기간이 있었지요? 그때 여러분 그림도 걸개그림으로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고, 상징이나 암호를 통해서 서로 말을 주고 받았는데... 저도 대학 4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는 사건이 있었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에도 형들이 그런 암호를 많이 하니까? 우리도 한자를 배웠다고 그것을 가지고 그렇게 했거든요. 그런 암호로 주고받으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발각이 되어도 안전하거든요. 여학생에게 편지를 보낼 때에 뭐라 했는가? “一月 三星이 有하시면 二日 二時요” 라는 편지를 주고받았다고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요? 일월 삼성이 유하면, 하나의 달에 별이 세 개가 있으면 2일 2시가 뭔가? 이런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하면 완전히 엉뚱한 말이 되지요. 웃기는 이야기잖아요. 우리끼리 암호는 뭐냐면, 일월 삼성은 초승달 위에 별 3개가 있으면 마음 心자가 되요. 유하면 있으면 이라는 것이지요.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한자를 배웠는데 한자 좀 배운 걸 가지고 써 먹은 거야. 마음이 있으면 이일이시요. 2일 2시가 50시간이잖아요. 그래서 오십시오! 여학생에게 나에게 마음이 있으면 나한테 와라. 라는 걸 그렇게 암호로 전달 한 거예요.

여러분 요한계시록도 말세에 임하는 그런 엄청난 재앙이 아니고, 너희들이 지금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로마시대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너희들이 로마에 있는 사람들과 똑같이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하고, 너 출세를 위해서 황제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이런 짓을 하니까 하나님이 너희들을 깨우치기에서 재앙을 내린 거야라는 말씀이에요.

 

요한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이나, 에스겔이 말씀을 하는 것이나, 요엘이 말씀 하는 것이나 기록된 성경에 의한 것이어야지, 선지자이지만 자기가 임의로 말을 하면 성경이 될 수 없는 거예요.

자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예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코로나 19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재앙이야 라고 말을 할 때에, 내가 주관적인 견해를 말한 것이면 믿을 필요가 없는 것이예요. 설령 목사님 그렇게 말을 해도... 교주가 아무리 말을 해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예요.

 

그러면 요엘이나 에스겔이나 요한이 어디에 근거해서 말을 한 것인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토라, 율법이라고 해요. 한마디로 헌법이라는 말입니다. 이 모세 오경이 모든 성경의 기초입니다.

판사가 어떤 판결을 제 마음대로 판결을 내릴 때 우리에게 하나의 안전판이 있지 뭐예요? 그게 헌법에 위배되는가? 위배되지 않는가? 헌법소원을 하잖아요! 그 헌법이 우리나라의 모든 법의 모법이고, 어떠한 법도 헌법을 넘어설 수 없는 것 같이, 성경의 어떠한 주장도 모세오경을 넘어설 수 없는 거예요. 토라가 모든 성경의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요엘 선지자의 말이든지, 에스겔 선지자의 말이든지, 요한이 한 설교든지, 목사가 한 설교라도 모세오경에 근거 한 것이어야 돼요.

모세오경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할렐루야! 하나님! 놀렐루야! 이렇게 말만 하는 것이 아니예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잖아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고 했잖아요. (창 20:11, 42:18, 출1:17) 무엇이 율법이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에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마 22:36-41) 왜 사람들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가? 돈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모세오경 중에서 레위기는 율법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4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징계한다. 그랬어요. 레위기 26장 13절에서 22절을 보면 하나는 전염병, 하나는 전쟁, 하나는 기근, 하나는 들짐승, 이 4가지가 하나님이 내리는 징계라는 거예요!

여러분 요한계시록에서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당한다고 하는, 적황색 말로 인한 재앙도 어떤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하는가?

요한계시록을 쓸 때 로마제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팍스 로마나라고 할 만큼 강력한 국가였지만 로마제국을 괴롭히는 제국이 하나 있어요. 동쪽에 있는 파르티안 제국이었어요. 이 파르티안 제국은 기마술이 뛰어났어요. 파르티안 제국의 기마병들은 말을 타고 뒤돌아보면서 활을 쏠 정도로 기마술이 뛰어난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영어에 Parthian shot이라는 말은 뒤돌아서서 한마디 내뱉는 말을 의미해요. 마음에 안들 때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한마디 뱉고는 사라지는 그런 말을 말해요.

파르티안 제국으로 인하여 로마가 굉장히 고통을 당할 때, 그 재앙이 왜 일어나는 줄 아느냐? 레위기에 의한 경고로, 이 전쟁이 너희들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야! 이런 말씀이 요한 계시록의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들이 회개를 해야, 세상이 구원을 받고, 여러분들의 삶이 건강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고 믿어야 되는데.. 그러면 코로나 19에 대한 것은 제가 오늘 하나님의 징계라고 했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하면 이단이 되는 거예요. 자! 이 부분 중요해요.

여러분들이 먼저 한 가지 아셔야 되는 것은, 이런 재앙이 있을 때 먼저 인문학적 접근도 중요해요. 다만 인문학적 접근은 한계가 있어요. 그것이 문제예요. 그러나 복음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요. 인문학은 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현상 분석은 제대로 하는데 대안이 없어요. 그래서 구원이 일어나지 않아요. 인문학이나 과학은 성경에 대해서 적대인 것이 아니고요. 그런 인문학이나 과학도 인간의 삶에 약간은 유익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만 보면 외골수가 되는 거예요. 복음으로 가지고 인문학과 과학을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해요.

오늘 코로나 19도 인문학적 측면에서 보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라는 책이 있어요. 목사님들도 이런 책도 읽어야 되요. 맨날 성경만 보니까,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거예요. 그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좀 잔잔해졌다. 지금 또 엄청난 관심을 일으킬 거예요.

그 책에 의하면 원시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총, 무력과 그것을 만들어낸 금속 발명과 그 다음 병원균의 관점에서 역사를 본 것예요. 인문학도 약간의 유익이 되는 것을 그동안 너무나 역사는 승리자의 관점에서만 보는 역사였잖아요? 유럽 중심, 백인중심의 역사관이 만연해 있잖아요. 심지어 성경도 백인우월주의로 성경을 해석을 했잖아요.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게 뭐냐면 이런 거예요. 우리 인류의 가장 치욕스런 역사가 뭐냐면 흑인을 노예로 삼은 거잖아요. 그런데 백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성경에 보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고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 흑인들을 노예로 삼아야 되니까, 성경을 통하여 자기네들의 삶을 합리화를 시키는 거야! 성경을 보면,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가 포도주를 먹고 취해서 벌거벗고 누워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의 아들, 셈 함 야벳 중에서 함이라는 아들이 아버지의 벗은 모습을 보면서 형제들에게 가서 희롱을 한 거예요. 그러나 샘은 그 소리를 듣고 담요를 뒷걸음질 쳐 가지고 아버지를 가려 준 거예요. 그때 노아가 함에게 저주를 합니다.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해석을 하는 가하면, 야벳은 백인 족속이요. 샘은 황인종이요. 함은 흑인이다. 이렇게 규정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후예 흑인들이 백인의 노예가 되는 것은 당연해! 그랬다고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저 흑인들이 백인의 노예 생활 하는 것이 당연해! 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야. 주일학교 들었던 설교가 그런 설교였어요. 흑인을 노예로 삼으며,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이 있다는 자신들의 삶을 당연시하는 지배 논리로 성경을 이용했던 거예요.

 

그런데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보면, 지금 미국 사람들이 사는 아메리카 대륙이 원래 자기네 땅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우리 같이 핏줄로 인하여 호적을 주는 게 아니라, 미국 땅에서 나면 무조건 시민권을 주는 이유는 그렇게 안하면 자기네들이 그 땅의 주인 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에요.

유럽인들이 미국 땅이나 중남미를 자기네들이 지배하기 위한 정당한 논리로 뭐라 했는가 하면, 아메리카 대륙에 100만 명밖에 사람이 없었다. 그 엄청난 땅 덩어리에 100 만 명밖에 살지 않았으니까, 비어 있는 땅을 우리 유럽인들 백인들이 가서 채워서 이렇게 잘 살게 했어! 이런 논리를 만들어내었던 거예요. 지금도 이런 백인우월주의가 세계에 만연해 있잖아요? 우리 손흥민도 영국에서 그렇게 축구를 잘 해도 백인우월주의 사상에 빠진 아이들은 눈이 찢어졌다고 비하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럴 때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이야기하는 것이 뭐냐면, 아메리카가 100만 명만 있었던 게 아니다. 2천만 명 정도 있었는데, 백인들이 그 땅을 차지하는데 합리성을 가지려고 그렇게 말한 거다.

어떻게 2천 만 명이 100만 명으로 줄어들었는지 아는가? 유럽에는 천연두라든지, 홍역이라든지, 결핵이라든지, 백일해라든지, 이런 많은 병원균이 있었는데, 저 아메리카 대륙에는 그런 병원균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콜럼버스가 발견한 후 유럽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병원균, 홍역 같으면 평생 면역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유럽인들에게 홍역을 한번 앓았기 때문에 평생 면역 있는 사람이니까 홍역균이 있어도 괜찮지만 원주민들에게는 그런 병원균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한번 그 병원균이 돌면 지금 코로나 19와 같이 온 부족이 멸살을 당한 거예요. 지금 유럽인들이 코로나 19를 가지고 이렇게 난리를 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면, 바로 그런 것에 대한 경험 때문이지요. 총칼보다 무서운 게 병원균이라는 거지요. 백인들이 우수해서 그 땅을 차지한 것이나 그 땅에 비어 있어서 차지한 것이 아니라, 병원균 때문에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아직 성지순례도 안 갔습니다. 이스라엘 땅이 성지라고 저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성지는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닌데...(이 또한 중요한 것이지만 여기서는 여기까지만)

유럽은 엄청난 찬란한 문화를 이루는 르네상스가 있었지만 그전에는 동양이 훨씬 더 잘 살다가 근대에 와서 유럽이 이렇게 잘 살게 되었던 것이지요. 저도 언젠가는 한번 가 봐야 되겠지만 남미 쪽에는 아즈텍 문화나 마야 문명 이런 엄청난 문화를 이루었는데, 스페인이 군대 백 몇 명을 가 가지고 아즈택의 수십만 명의 군인을 몰살시키고 거길 점령했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무기의 우울성, 문명의 우월성, 능력이 있는 사람 백인이라고 하면서 자기네들의 우월을 주장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에서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백 몇 명이 갔을 때 왜 수십만 명의 군대가 몰살을 당했는가? 병원균이 먼저 휩쓸어 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혈 입성했다는 거예요. 아프리카나 이런 데 갔을 때에 유럽인들에게 약한 병원균이 뭐냐면 말라리아예요. 말라리아 하나만 유럽인들에게 약한 것이었어요. 우리는 지금도 그런데 가면서 말라리아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가 그런데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안 맞아도 살지만...

여러분들이 그 책을 보면서 그 내용을 아는 것보다 그의 책에서 의도하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더 중요하지요. 우리가 그동안 너무나 백인우월주의 사고로서 흑인을 그렇게 취급한 한 거에요.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러면 안 돼! 라는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는데, 여러분 그런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대안이 아녜요.

 

코로나 사태나 어떤 재앙을 보면서 복음이 말하는 게 뭔가? 하나님의 계시가 뭔가? 를 아셔야 되요. 그럴 때에도 중요한 것은 이단들과 같이 이런 재앙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해 버리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공포가 생겨요. 그것이 문제예요.

공포에 대한 것들에 대한 것도 유튜브에는 많이 다루지 않아도, KBS 아침마당에 보니까 이런 코로나 사태로 국민들이 공포에 싸일까봐, 정신과의사를 불러 강의를 하더라고요. 제가 가만히 들어 보니까, 그 정신과 의사의 강의도 참 유익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제시되지는 않지만 약간의 유익은 있더라고요. 인간의 학문은 분명히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복음은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있어요.

 

정신과 분석에서, 사람은 아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을 느낀다는 거야.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공포심을 느낀다는 거예요. 코로나가 우리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언제 끝날지... 이게 누구에 의해서 전염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공포가 생기는데, 이런 공포심을 극복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거예요. 안 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럴 때에 외톨이가 되면 공포에 쌓여서 이상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된다고 해요. 관계 단절이 되면 안 되고, 그 다음에 생각을 이렇게 해라라고 말을 하면서, 공포를 이기는 생각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생각하래요.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공포를 이기는 중요한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고, 여러분 외톨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공포를 극복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이 되는가? 아니에요.

 

근본적인 문제가 안 되면 이런 재앙이 반복해서 일어나는데, 성경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 전에 먼저 여러분들이 인문학적 도움을 받으면 이단의 감별법도 생겨요. 이단은 재앙이라든지 여러분들의 삶의 고난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포심이 생겨요. 공포심이 생기면 이성이 마비돼요. 사람의 이성이 마비되면 그 공포를 심어준 사람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사람들이 움직여요.

제가 어제도 사우나를 갔는데, 뭐 몇 명 없더라고 그 넓은 사우나에서 제가 나오는데 온 몸에 그림을 그린 사람이 들어오는데, 왜 몸에 문신을 하고 그림을 그려요. 목욕탕에서나 자기 옷을 벗으면 되는데, 싸울 때는 그걸 보여 준다고 옷을 벗거든요. 그 이유는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주워서, 상대방을 제압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 원리가 똑같은 이단의 원리에요. 144,000명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지옥 가고 요한 계시록의 재앙을 받는다는 생각을 심어 주어서, 공포심을 불러 일으켜 가지고, 김남희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보니까? 맞춤법도 모르는 그 사람이 성경을 해석한 걸 믿는 이유는 공포심 때문이예요.

여러분 세뇌 세뇌 세뇌 교육한다고 하잖아요. 신천지는 6개월 동안 하는 세뇌 교육이 뭐냐면, 공포심을 심어 주는 거예요. 그것을 모르고 세뇌만 이야기하면 안 돼요. 목사는 종교적인 원리를 아셔야지... 안 그러니까 판판이 이단에 지는 거지요.

목사들도 교인들에게 “장로님, 왜 자녀가 안 되는 줄 알아요? 하나님 말씀 안 들어서 그래, 내 말 들어”라고 하면 공포심이 일어나는 거죠. 그러면 목사가 이야기하는 대로 하게 되고, 그러면 교회가 종교적인 목적을 잘 달성하지만 개인의 삶의 파괴와 하나님의 구원이 세상에 안 나타나는 거예요.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분명히 오늘 날 유튜브가 이렇게 활성화 되는 것은 가짜 뉴스가 지상파에 많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저는 유튜브를 안 믿습니다. 왜? 그거는 그냥 자기주장이거든요. 지상파는 그래도 방송윤리 규제를 받아요. 마찬가지로 이단은 누구에게도 규제를 안 받아요. 그래도 기성교회는 제어하는 기관이 있다고요 그러나 기성교회가 한 가지 알아야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제대로 선포 안 하니까, 가짜 뉴스인 이단이 판친다는 거을 알아야 해요. 제대로 복음을 선포 안 하고, 아니 못하고, 교인들에게 겁을 줘 가지고, 예수 믿게 하고, 종교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여러분들이 해야 되는데, 그 이유가 뭐냐면, 이미 제가 우리 교회에서 고린도전서 11장을 여러 번 강해했어요? 여러분들이 목이 곧아서 안 들어서 그렇지...

고린도전서 11장 31절 32절을 보면,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라는 말씀이에요. 이 말씀은 헬라어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말이 아니에요. 헬라어로 보면 언어유희가 들어 있어요. 왜냐하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알지도 못하고,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교주가 이야기하는 걸 믿으니까? 문제이지요. 왜 믿는가? 6개월 동안 공포심을 심어 줬기 때문이예요. 기성교회 교인들이 택도 아닌 설교에 귀 기울여 자기 인생을 망치는가? 공포심 때문입니다. 왜 그런 것인가? 정통 교회 목사마저도 주관적인 주장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가? 이 부분에 대한 것은 수요일 날, 제가 여러분들에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지만. 지금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이라는 말은 디에크리노멘이라는 헬라어예요. 그 뒤에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크리노멘이예요. 크리노멘 앞, 뒤에 접두사를 붙여서 언어유희를 하고 있고, 그 뒤에 보면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요.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아니 함이라” 할 때, 정죄함은 카타크리노멘이라는 거예요. 크리노멘을 중심으로 앞에 카타를 붙여서 사람들에게 강한 어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크린노멘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 성경에는 ‘판단을 받는’이지만, 영어 성경에는 재판(judge)이라고 번역 했어요. 그리고 크리노멘 앞에 디에라는 접두사를 붙이면 살핀다는 말이 된다. 재판을 받을 때에 자기의 모습을 뒤돌아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법정에 가본 적이 없지요. 판사 앞에 서면 판사가 “너의 죄를 알렸다.” 이런다고요. 그러면 판사 앞에서는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면서 뉘우치면 정상이 참작되지요. 자기를 살펴보지 않고 자기주장을 하면 뉘우치지 않는다고 엄벌을 내립니다. 재판을 받는 기간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에요. 이때 여러분들이 공포에 사로잡히면 안 돼요. 정확한 사고를 가지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가지고 올바로 자신을 변론해야 해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금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재판에서 불구속으로 하는 것은 굉장한 민주주의의 열매고 바람직한 거예요. 잘 보세요. 여러분들이 감옥에 가 있으면 자기 변론의 사고가 마비된다고요. 그러면 잘못된 판결에 의해서 인생을 망칠 수가 있는 거예요. 이단의 문제는 감옥에 사람을 가둬 두는 것과 같은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에는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고요.

여러분들이 당하는 이 세상의 모든 재앙, 코로나 19나, 여러분들의 자녀가 잘 안 되거나, 뭐 병에 걸렸거나, 여러분들의 삶이 잘 안 될 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재판의 과정이예요. 이 재판에서 여러분들이 자신을 잘 살펴보아야 하는 거예요.

 

예배는 왜 드리는가? 이 세상은 지금 하나님의 재판 중인데,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예요.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지옥 갈 사람들이라고만 말하지 말고요. 하나님이 재판 속에 있는데 이 사람들은 지금 도망자로 살면서 자기를 살피지 않는 거예요.

예배에 안 나오고 나오고 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려야만 구원받는다는 것도 아니고, 유튜브를 통해서 설교를 들을지라도, 이 설교에서 자신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이 자리에 와서도 자기를 살피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변론만 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뒤에 보면 카타크로노멘(정죄함)이라는 것은 유죄판결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 말은 신학적으로 지옥 간다는 말이예요.

어떤 사람이 지옥으로 가는가? 하나님께서 지금 이 세상을 재판하고 있는데, 그 재판이 좀 심한 게, 코로나 19나 여러분들의 삶의 고통 등이 다 재판이라는 것입니다. 아직은 무죄추정입니다. 이 때 예배에 와서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을 돌아봐야 되는데, 그러려면 정확한 기준에 의해서 헌법에 의해서 자기를 돌아봐야 되잖아요? 그런데 공포에 휩싸이면 못된 교주가 하는 말에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교주에 넘어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나 교주의 설교나 모두다 법률입니다. 법률조차도 헌법에 위배되는 가를 봐야 되잖아요? 여러분들이 이곳에 와서 자신을 살피고 돌아볼 때에 목사님의 말씀이나 교주의 말이나 법률이란 말입니다. 그 법률조차도 성경 모세오경과 성경에 위배되는가를 먼저 살펴서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면, 판사가 자기 맘대로 판결 하니까... 사법살인 같은 게 일어나는 거예요. 그게 이단이에요. 이단에는 헌법재판소가 없는 것이 문제예요. 정통 교회는 헌법 재판소가 있으나 때때로 헌법 재판소도 권력과 결탁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해도, 그래도 헌법 재판소가 있는 것이 안전하잖아요. 최종적인 헌법 재판은 죽어서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것이예요. 그러니 안전해요.

그런데 이단들이 하나님의 재판을 자신들이 최종심으로 판결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유죄판결로 내려버리면 더 이상 제소할 데가 없는 것이 문제예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에게 공포심이 생겨요. 그 잘못된 법에 의한 살인을 하는데도 공포에 싸여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결국 파멸로 가는 것이에요. 신천지 사건이 이런 것들이예요.

 

이 정도로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면 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제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인 고린도전서 말씀이 히브리서에도 나오는 거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다 보니 설교가 길어지기도 합니다. 여기서 설교를 그쳐도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도 힘들지 않고...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제자훈련 (disciple)이라 해요. 코로나는 여러분들이 잘 아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여 하시는 제자훈련이예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자신 속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는가? 살피는 예배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정통교회마저 백인 우월주의의 역사관이 만연하니까, 이런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제자 훈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제대로 된 모세 오경과 헌법에 의한 법률의 판결이 오늘 설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은 민주 공화국이잖아요.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사람이 우선이 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성경, 하나님의 헌법 토라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제일 큰 계명이라 하잖아요.

오늘 날 교회가 과연 얼마나 그런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가? 전부 이단과 같이 자기만 구원 받으려고, 공포심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고난 속에서 여러분들이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가치 판단을 하라고, 공포심을 갖지 말라고, 징계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시는 것예요. 저는 교인들이 저보고 “우리 목사님 같은 분 없어” 하는 것 잘 안 믿어요. 좋을 때는 아무나 그렇게 해요. 자기에게 손해가 되고 감정의 손상이 있어도 우리 목사님 이니까! 내가 평생 가야지 이런 사람이 나를 믿는 거지요. 저 또한 여러분들에게도 마찬가지고... 교회에서 헌금 잘하고 출석 잘하고 봉사 잘 할 때 “아이고 우리 장로님 우리 집사님” 그건 아무나 하는 거예요. 골칫덩어리 일 때에도 우리교회 교인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목사님이 진짜 목사님이지요. 그래서 히브리서는 징계가 없으면 하나님이 버린 사생자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한다고 합니다. 재판과정에서 공포심을 갖지 말도록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오늘 날 교회마저도 어려움이 있을 때 공포심을 심어 주지는 않나요?

 

제가 신영광교회 있을 때에 장로님 한분 있었어요. 장로가 안 될 사람이 장로가 됐는데 100억 쯤 가지고 있었어요. 저보고 하루는 “목사님!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지요. 그러면 목사님은 우리의 종이겠네요?”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맞다고, 나는 장로님과 교인들의 종이라고 하니까, 그 분은 건축을 하는데, 맨날 건재상에 앉아서 고스톱이나 치고, 골프나 치고, 욕은 쌍욕을 혼자 다 하고 돌아다니고, 정말 거친 사람이에요.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내가 이렇게 살아도” 자기 죄는 알아요! 그런데 디에크리노맨을 전혀 안 해요. “자기는 이렇게 살아도 하는 것마다 잘 되는 거 보니까 하나님이 나를 짝사랑하는 거 같다.” 고 하더라고요.

그 분의 가치판단이 뭐냐? 물신주의적 가치판단이에요. 그래서 제가 뭐라 했는가? 히브리서를 가지고 “장로님! 하나님이 짝사랑하는 게 아니라, 버린 자식이 아닌가?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자기를 잘 안 살피니까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분을 사랑하셔서 쫄딱 망하게 했는데, 2, 3년 전까지만 나한테 전화 올 때마다 목사님 100만 원만 좀 주시오. 해서 보내 주다가 작년부터 제가 전화를 끊었어요.

정말 그분은 못 살피더라고요. 그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내가 건방졌구나! 돈만 알았구나!” 이래야 카타크리노멘, 유죄판결, 지옥에 안 가는 판결이 있어요. 여러분은 남들이 안 걸리는 병 걸립니까?

여러분들의 자녀가 노력해도 제대로 안 됩니까?

암만 열심히 해도 사업이 잘 안 됩니까?

자기를 디에크리노멘 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시는 거에요. 고린도후서와 같이 시편 기자도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잖아요. 제가 제일 사랑하는 말씀이에요. “내가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당한 이후에 주의 율례와 규례를 배웠노라. 고난당함이 나에게 유익이라” (시 119:67.71) 좋을 때 하나님! 할렐루야! 아무나 해요. 고난 속에 어떤 믿음을 가지는 가? 겁이 나서 목사님 말을, 교주의 말에 순종하는 것, 그건 가짜 뉴스에 속는 거에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버리는 것도 잘못된 것이거든요.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하여 고난을 당한다고 성경은 그렇게 말해요. (애 3:39)

여러분은 여러분들을 살펴보면서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람이 되게 훈련을 시키는 것이구나! 깨달아야 해요. 얼마나 가짜뉴스가 많은지 몰라요. 교회 설교도 “하나님

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도, 지금 나에게 이 고통이 있지만 이 고통 지나가면 더 잘 되게 할 거야! 전부 자기 마음에 생각나는 대로 새옹지마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에 대해서 무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나를 사람 되게 하는 거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고 이 고난을 주셨구나! 나에게 이 고난이 없었으면, 내가 천지에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놈이 됐을 텐데, 고난 때문에 고난당한 사람의 마음도 알고, 심정도 아는 거구나! 이런 것이 제자 훈련이에요. 성경의 지식만 쌓는 것이 제자 훈련이 아니에요.

 

3절에 보면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너희는 이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손에게 말할 것이니라.”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재앙으로 인한 징계를, 이 메뚜기 재앙을 이야기 해 주라는 거에요. 코로나 19 재앙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서 다시는 이런 재앙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예요. 이것이 인문학과 복음과 성경의 차이에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랑하는 자에게 징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말해 줘야 돼요.

코로나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외톨이가 되지 아니하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면서 코로나를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코로나가 다시는 우리 후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도록 자기를 살피게 하는 것이 목사의 사명이고, 교회의 사명 이지요. 정신과 의사들은 그 정도만 하면 돼요. 인문학자들은 재레드 다이아몬드 정도만 하면 돼요. 그러나 성경은, 왜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로 믿어야 되는가? 그래야만이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믿는다고 무턱대고 징계가 일어나지 않다는 것이 아니에요.

이런 것에 대해서 차이나는 클래스라는 T.V를 보면, 김누리 교수의 강의가 있어요. 김누리 교수는 중앙대학교의 독어독문학과 교수인데, 독일 전문가에요. 독일이라는 나라는 프로이센 제국, 신성로마제국이었어요. 기독교 국가였어요. 근대국가로 오면서 독일이 됐는데, 독일의 정신은 성경의 정신이에요. 근검절약이 독일 민족의 근성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도 다 인문학적 측면에서만 보는 거지요. 복음으로 성경을 못 보는 거야. 김누리 교수의 강의도 비판하면서 봐야 돼요. 독일 사람들에게 무엇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했는가?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면서 부터라는 걸 알아야 돼요.

김누리 교수는 독일 교육의 중요한 기조 둘이 있는데, 하나가 저항교육이라는 거예요. 독일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이 배우면, 학교를 나오면 나올수록 기성세대와 기성의 가치에 저항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가르친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가르치는가?

그동안 잘못된 기독교 국가로 있을 때에는 저항을 안 가리키고 아멘을 가르켰거든요. 지금 우리 한국이 그러잖아요! 목사님의 말씀을 무조건 아멘하라고 가르치잖아요. 그래서 택도 아닌 전광훈의 말에도 아멘! “하나님 까불면 나에게 죽어” 이런 말을 해도 아멘한다고요. 아멘 교육이었다고요. 잘못된 기독교는 고린도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예만 있나니를 아멘만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가르치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목사님의 설교라고만 가르치니까 완전히 잘못 가르친다는 거예요. 또 우리는 유교 정신이 있잖아요. 유교는 뭡니까? 어른에게 복종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독일이 근대의 교육에서 저항을 가르치는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독일에 의해서 일어났잖아요. 패전을 하고도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잖아요. 왜 일어났어요? 1차 세계대전에서 자기네들이 패전국으로 지불해야 할 보상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것도 히틀러의 선동은 그들에게 매력이 있는 말이었던 것이었어요. 그래서 하이 히틀러 한 것이에요.

독일 사람들이 교회에서 배운 대로 아멘! 한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보면 늙은이들아, 너희 주민들아 하면서 깨우쳐야 되는데, 그동안 교회에서 배운 훈련이 아멘이니깐, 1차 세계대전의 배상으로 허덕이는데 나치 히틀러가 일어나서 독일 만세! 나치즘은 선포하니 아멘 한 거에요. 전부 그 아멘이 어디서 나왔는가? 잘못된 성경 교육에서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거에요. 그 결과 엄청난 비극을 초래 한 거지요. 카타크리노멘 당한 거예요. 1차 세계대전을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해서 자신들을 잘 살펴야 되는데, 디아크리노멘을 잘못 한 거예요. 그래서 저항하지 않는 교육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깨닫게 된 것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저항 교육을 시키는 것이에요. 제가 우리 부교육자들에게, 내가 가르친다고 무조건 아멘 하지 마! 성경에 의해서 그리한 가? 살펴 봐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은 베뢰아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 한가 날마다 상고해서 신사적이었다고 해요.

우리 한국 교회가 왜? 세상을 깨우치는 선지자의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가? 독일에서 프로이센 제국의 영향으로 아멘만 가르쳐서, 디아크리노멘은 못 하고,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재판에서 카타크리노멘, 정죄함, 유죄 판결을 받아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거예요.

그리고 난 뒤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을 디에크리노멘을 것이, 하나님의 징계로 봐서 유죄 판결을 받지 않으려고 다시는 우리가 나치즘의 히틀러 같은 반 미치갱이에게 아멘 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 저항을 가르치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이 코로나 사태를 통하여 우리가 무조건 아멘 했구나! 그러니까 신천지가 판을 치는 거구나! 그래도 정통교회를 섬겨야 하는 것은 정통 교회에도 가짜 설교가 있을지라도 정통교회는 제어하는 기관이라도 있구나! 생각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여러분들이 아셔야 해요.

 

크리노멘, 디에크리노맨, 카타크리노멘,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자기를 살피지 않으면 지옥가요. 곧은 목을 꺽으세요. 종교적인 과업 달성이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의 경외가 말로만이 아닌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사람되게 하는 것이구나! 생각해서 여러분들이 자녀들에게,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되는가? 가르쳐 주어야 되요. 다시는 이런 재앙이 나오지 않도록 또 교회가 반성해야 되는 거예요. 이런 혼돈 속에서도 무조건 예배 드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사인 것을 드러내자 라고 하는 것은 목사 자기 이야기지요.

 

또 독일교육의 두 번째가 생태교육이예요. 독일의 아이들이 언제 죄책감을 느끼는 가 하면,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근검절약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인문학이예요. 복음으로 봐야 되요.

반면에 우리는 교인들에게 언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가 하면, 종교적인 행위에 죄책감 느끼게 만들어 버려요. 그러니까 죽은 종교가 되는 거예요.

독일 생태교육으로 소비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거에요. 김누리 교수에 의하면 독일 아이들도 졸업여행을 가잖아요,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가는 데는 스스로 안 간다고 합니다. 열차 타고 가는 곳에 간다는 거에요. 아이들 스스로가 비행기를 타는 것을 거부하고, 열차를 타는 것은 죄책감 때문이라는 거야.

친구를 만나러 열차를 타면 8시간이나 걸리고, 비행기를 타면 1시간이면 가는데, 왜 열차를 타고 가는가? 돈이 없어서 그런가? 근검절약해서 그런가? 그런 게 아니고, 오존층 파괴, 지구의 환경 파괴의 주범이 비행기라네요. 어떤 것 보다 가장 환경을 많이 파괴하는 것이 비행기래요.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가면 편하지만, 후손들에게 망가진 지구를 물려줄까 봐, 열차를 탄다는 거에요.

 

우리 인생은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거예요. 정치를 하는 행위도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거예요. 목사가 목회를 하는 것도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거예요. 성경의 비유를 신천지와 같이 해석하면 안 돼요.

옛날 부모들은 집을 지을 때 자자손손 그 집에 살려고 집을 지어요. 튼튼하게 기둥부터... 자기만 잘 살려고 집을 짓는 부모는 잘 없었어요. 3대 4대 잘 살려고 집을 지었어요.

여러분들이 왜 크리노멘 해야 되는가? 자자손손 잘 사는 집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전부 모델하우스를 지어요. 한 달이면 뚝딱 만드는데 얼마나 화려하고 좋아요. 그러나 곧 다 허물어 버려야 되요.

 

정치도 그래요. 역사에 남을 일을 해야 되는데 모델하우스와 같이 자기 얼굴 면이 나고, 자기 업적을 내세우려고 정치를 해버리니까,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순간 모델하우스와 같이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저는 4대 강이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자신의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지속이 안 될 것 같으면 안 하는 것이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장로지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데 자기 혼자 옳다고 진행하니까, 얼마나 많은 낭비가 일어나는 거야. 모델하우스를 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집을 내가 그곳에 못 살더라도 내 자자손손 살 집을 짓듯이 정치해야 되고요.

 

여러분들의 인생도 내가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살아가는 것은 모델하우스를 짓는 것과 같은 거에요. 그런 투기하는 인생을 살지 말고요. 내 대는 고생하더라도 내 다음 대에 잘 살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번영은 우리 부모들이 자신을 고생하더라도 자식들은 잘살게 하겠다고 살았기 때문이잖아요. 우리는 그 열매를 가지고 따 먹으면서, 자녀들에게는, 후손을 위해서 좋은 세상을 물려주려고 하는 것이 생태교육의 정신이예요.

 

목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지만 저도 큰 예배당을 짓고 “하나님! 예배당 좀 채워 주세요. 재정 많아져서 교인들을 내가 행복하게 해 드릴게요.” 기도해도 안 채워 주시는 거 같아요. 그때 내 속에 생각난 말씀이 뭐냐면, 바울의 고백이었어요.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10절에 보면, 바울은, 여러 받은 계시가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으나 나에게 이르시기를 네 은혜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백하였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도하면 복 줍니다. 신천지와 같이 그래 가지고 교회당을 채우면 자고해져요.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분량대로 살다가 내 다음 대의 목사가 교회당을 채우도록 기초를 쌓는 게, 그게 집을 잘 짓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이 코로나 사태에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대통령들이 정치인들이 모델하우스를 지으려고 할 때에 저항 교육을 못 받아서 아멘 교육만 했으니까 이 나라에 낭비하는 정책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교회가 아멘 교육만 시켜서 목사님들이 말씀으로 교인들에게 공포심만 일으켜서 종교적인 목적을 달성하였기 때문에 이단이 활개 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디에 크리노멘 해야 합니다.

 

똑같은 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이었지만 독일은 자기반성 디에크리노멘 했기 때문에 일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잖아요.

오늘도 여러분이 코로나 사태를 개인적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해서 공포를 이기는 것도 중요하고, 다이아몬드 총. 균. 쇠를 보면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거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집을 짓는데 모델하우스가 아니라 후손들이 편히 살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는 것이 하나님의 헌법, 모세오경의 정신이구나! 깨달아서, 우리나라가 이제는 이념에 휘둘리지 말고요. 다 공포잖아요? 좌파가 정권을 잡으면 공산화 된다는 공포심을 심어 주어서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될지 안 될지를 어떻게 알아요. 또 우파가 잡으면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고 공포심을 심어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계략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전부 미래를 자기 식으로 예측을 해 가지고 공포를 줘 가지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좌파 우파의 농락에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목사들마저도 그런 것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니까, 여기저기 휘둘려 가지고 유튜브를 목사의 단톡에 올리지를 않나? 답답해요.

204장 찬송합시다.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