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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아비 (5월3일) 녹취록

20. 5-3 (어린이 주일)

 

 

겸손한 아비

엡 6:4 564장, 563장

 

 

어린이 주일이 되면 부모님이나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사 주시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선물이나 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인데, 성경은 보다 근본적인 것,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복이고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게 하나님 나라 아니겠어요? 성경은 그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제가 부 교육자에게 말했습니다. 팟빵에서 JTBC 차이나는 클래스라고 하는 프로그램을 링크해서 듣도록 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들으시면 좋을 거 같아요. 특히 147회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의 강의는 반드시 들었으면 해요. 강의 제목이 뭐냐 하면, 새로운 나라를 만든 독일교육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나라, 더 좋은 국가를 선물로 주는 것 같이 더 귀한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강의를 들으시면서 그냥 듣고 끝나버리면, 아 그 교수 강의 좋았지 이렇게 끝나버립니다. 좋은 강의는 여러분들의 가치관이 되어야 돼요. 그래야 그 강의 효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듣고 끝나니까, “오늘 목사님 설교 은혜 있었어!” 이렇게 끝나 버립니다. 설교가 가치관이 되지 아니하면 삶이 변화되지 않아요. 그저 하나의 죽은 종교인이 되어 버리고 또 가치관의 변화가 없으면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 합니다.

여러분들이 설교를 듣고 난 뒤에 설교를 자기 말로 해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차이나는 클래스 김누리 교수 강의도 듣고, 자신의 말로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해봐요. 그러면 그 강의가 자신의 가치관이 됩니다. 교인들이 그렇게 오래 예수를 믿으면서도 변화되지 않는가? 설교를 자기 말로 안 해 봐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와 12제자를 파송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복음을 자신의 말로 해 보라는 거예요. 그게 전도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 세력의 확산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이 자신의 삶의 가치관이 되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까지와 다른 삶을 살게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팟빵에서 링크해서 강의를 듣도록 해라 했는데, 저도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세 번이나 들었어요. 오늘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그 강의 내용을 그대로 말하는 게 아니고, 독일은 성경적으로 어떻게 그런 교육을 하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인한 새로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성경적 관점에서 보는 눈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설교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때도 아이들이 원하는 걸 줘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오늘 설교 본문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라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제가 1987년도에 이태원에 있는 대성교회 초등부를 담당 했는데, 깜짝 놀랐던 것은, 아이들에게 선물로 상을 주는데 아이들이 상을 받고 나가면서 쓰레기통에 버려요. 그 상이 뭐였느냐? 학용품이었거든요.

저는 60년대 초등학교들 다녔는데 그때는 학용품을 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80년대에는 그러는 학용품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선물이 되지 못하는데, 교회는 여전히 변하지 않고 학용품으로 선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례를 17만 원을 받을 땐데, 3호 터널 지나 명동에 가서, 제가 받은 사례를 가지고 개인적으로 매주일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이나 시계를 사서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도 안 버리고 너무나 좋아해요. 그리고 아이들이 제 눈빛만 봐도 저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을 하더라고요.

오늘도 자녀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돼요. 그런데도 오늘날 부모들 중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녀에게 주려고 하는 부모들이 참 많습니다.

왜 그런가? 부모가 교만해서 그래요. 교만은 자기가 경험한 세계가 다 인 줄 알고, 모든 걸 그 경험의 잣대로 바라보는 겁니다.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 많지요? 자기가 보는 게 다 인줄 알고, 그것을 가지고 가치 평가하고 말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으로부터 구원의 시작이 되는데, 그 겸손이 회개를 하게 합니다. 반성, 회개 누가 하는가?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니더라. 내가 경험한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회개가 시작됩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용품이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지금도 그것을 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구지요. 전통을 고집하는 것이지요. 제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주려고 할 때, 교회 어른들이 “전도사 때문에 교회 망친다.”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교회에서 어떻게 장난감을 선물로 줄 수 있나?” “어떻게 시계를 선물로 주나?” 말들을 했다고요.

여러분들의 자녀를 왜 망치고, 왜 좋은 세상을 못 만들어 주는가? 부모가 자기가 원하는 걸 자녀에게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주려고 해야 돼요. 그것이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건데...

제가 2014년도에 어떻게 해야 노엽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어요.

 

두 번째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유익한 것을 줘야 됩니다. 그럴 때도 부모의 시각에서 아이에게 유익한 것을 주는 게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익한 것을 줘야 되는데, 자기가 경험한 시대의 그 가치관을 가지고, 그게 유익한 거라고 아이들에게 주니까, 시대가 완전히 변화 됐는데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깐 과거의 세계가 그대로 답습 되고 있는 겁니다. 그 말씀이 뭐냐면? 오늘 본문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이 경험한 것이 다가 아니고, 자신이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성경 앞에 겸손해져서 우리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는 부모가 됨으로 최고의 선물을 주는 그런 어린이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으려면,

첫째는 자녀들의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각자의 능력이 다 다르지요. 부모는 우리 아이는 뭐든지 잘할 수 있는데 안 한다는 그 잣대를 공부에 갖다 붙이면 아이들이 노엽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에요.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운동을 하는 것이나, 노래를 하는 것에는 타고난 재능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노여워하는 것입니다. 저는 신발 벗고 쫓아가도 한근형 선생과 같이 찬양은 못 가요. 그런데 자신의 자녀에게 근형이 같이 노래 잘 하게 하려고 하고, 어떤 화가보다도 위대한 그림을 그리게 하려고 하고, 손흥민이 같이 축구를 잘 하게 하려고 하고, 그리고 공부도 잘 하게 하려고 하니까, 자녀들이 노엽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얼굴이 각자 다르듯이 우리의 능력도 다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 큰 그릇이 있고 작은 그릇이 있고 금 그릇이 있고 질그릇이 있다고 그랬어요. 금 그릇은 귀한 것이고, 질그릇은 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간이 만든 가치의 잣대로 판단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어려운 겁니다.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가? 여러분의 잣대를 포기하고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앞에서 말씀드렸지만은 겸손한 생각이에요.

똑같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은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가잖아요?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과 이전의 독일은 완전히 다른 나라이지만, 일본은 이전의 일본이나 지금의 일본이나 똑 같아요. 그 중심에 성경이 있지요. 독일은 기독교 국가입니다. 근대 독일이 되기 전에 프로이센 제국이라는 신성로마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적 가치관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어요.

우리 한국교회는 유교적이고 유대교적인 가치관으로 모든 걸 가치 판단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시끄러운 거예요. 우리 교회에 다니면 참 편한 것은, 제가 기독교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이 뭐냐면, 사람은 누구나 잘못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독일은 기독교 국가이었지만 극악무도한 아우슈비츠의 사건, 600만 명을 가스실에 넣어 죽였고, 그 시체에서 나오는 기름을 가지고 비누를 만들고 화장품을 만드는 극악무도한 짓을 했습니다. 기독교 국가도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국가에는 성령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사람이, 성령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그것은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 합리화하느냐, 아니냐 로 판단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자신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느냐, 하는 것으로 안다고요. 로마서에 보면 바리새인이었고 유대교인이었던 바울은 기독교인이 되고 난 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하더라고 합니다.

 

김누리 교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독일의 교육의 기초가 뭐냐면, 저항교육이고 비판 교육이라고 합니다. 저항 하지 아니하고 비판 하지 아니하는 교육은 쓸모없는 교육이라는 거요. 우리의 생각, 우리의 신앙생활하고는 굉장히 다르지요? 우리는 순종하는 교육을 시켜요. 그런 교육은 유교적 교육입니다. 잘못된 기독교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멘할 때도 주님의 말씀에 아멘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한 가 날마다 상고해서 신사적이었다. 그래요.

성경 해석에는 언제나 맞는가, 아닌 가 상고해야 돼요. 성경 해석은 비판해야 돼요. 그래서 우리 부교육자들에게 항상 제 설교를 비판해라고 합니다. 비판하고 판단해 보고 하나님 말씀 일 때는 아멘해야 합니다. 더 성경적으로 되기 위한 회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비판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뒤에 전쟁 배상금으로 너무나 힘이 드는데, 히틀러가 배상금 지불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강한 독일을 주장한 나치즘 때문입니다. 그 때 모든 국민이 하이! 히틀러하며 저항을 안 한 거예요. 그들이 너무나 힘이 드니까, 순간 잘못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우리가 엄청난 죄를 저질렀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요. 그래서 그 이후의 교육은 저항하지 않고 비판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거지요.

오늘 여러분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공부의 능력을 극대화하려고한 것에 대해서 저항해야 되고 비판해야지, 자녀들이 노엽게 되지 않는다고요.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갔던 거예요.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독일이 시리아 난민 올 때 모든 유럽이 문을 잠글 때에도 독일은 100만 명을 받아들였다고요. 100만 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그 수상을 향하여 모든 나라가 다음에 정권을 잃을 거라 했는데, 그를 다시 수상으로 뽑은 위대한 독일국민이었어요. 그 중심에는 회개하는 성령이 그들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존경받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지금 미국이나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힘을 가지고 자국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런 때에 독일은 반대의 길을 걸어갑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마세요. 그러기 위해서 자녀의 능력을 무한이라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그 사람에 적합한 능력을 주었습니다. 이거 인정하는 것이 겸손한 부모에요. 이거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예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데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그래요. 얼마나 모순적인 말인지 몰라요. 이기기 위해서 즐기라고 말하는 것인 줄 알아요. 원래 그 말은 그런 말이 아니에요. 이기려고 하지 말고 즐기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기려면 즐기라고 생각한다고요. 얼마나 모순되게 생각합니까? 자기에게 타고난 재능과 타고난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어요? 그래서 행복하지 않는 거지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왜 가슴 깊이 새겨야 되는가? 저는요, 내가 살아온 세대하고 우리 자녀들이 사는 세대가 완전히 다르다고 봐요. 우리 세대에는 공부 안 하면 굶어 죽는 세대였어요. 생존의 시대였다고요. 그래서 죽느냐 사느냐로 공부를 해야 되었지만, 그런 우리들의 수고로 인하여 이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잖아요? 저는 이번 코로나 19에 깜짝 놀랐어요. 전 국민에게 가정 당 100만 원씩 준다는 거예요. 이런 굶어죽는 사람이 없는 시대에도 여전히 옛날의 가치관을 가지고 과거급제 하듯이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해 버리니까, 우리가 얼마나 교만한 마음으로 자녀를 기르고, 자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려고 하기 때문에 자녀를 노엽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 세대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선물로 주려고 우리가 그렇게 처절하게 살았잖아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살기 위해서 못 했는데 내 자녀에게는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도록 그렇게 살았잖아요. 그런 우리가 살아 온 시대의 가치관으로 아이에게 강요하면 안 되잖아요?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은 또 그 다음 세대의 자녀들에게 각자 각자의 맡은 능력을 가지고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선물로 주는 그런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30년 전 독일 선교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김유리 교수도 이야기하더라고요. 독일이 좋은 것은, 아이들이 대학에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 하는 것을 초등학교 선생님이 결정을 한데요. 그러면 부모님들이 그 결정을 다 따른다는 거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우리나라는 일반 학문은 4년 공부로 학사학위를 주지만 의사는 2년을 더 해야 돼요. 그리고 인턴과 레지던트의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됩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 의사이기 때문에 자격시험도 철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생님에 대한 자격을 그렇게 요구 합니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에 관한 일을 하는 의사보다 더 중요한 게 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이 선생님인데... 그래서 독일은 4년 동안 가르칠 교과과목에 대한 공부를 하고 나면, 1차 시험을 쳐서 통과되어야 하고, 통과 하면 2년 동안 실습을 해야 하고, 다시 2차 국가고시에 통과해야 교사가 된다고 해요. 그리고 중등교사가 되려면 그러고 난 뒤에 3년 4년 동안 논문을 또 써야 된대요. 국가고시를 통과하는 것이 끝이 아니고 그 때부터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 자격이 있는 교사에 의해서 아이들이 길러지는데, 한 반에 한 20명 되는 아이를 한 교사가 4년을 가르친대요. 그러니까 부모보다 자신의 아이에 대해서 선생님이 더 잘 아는 거요. 그래서 선생님이 학문의 능력이 없으면 직업학교를 가라고 할 때 부모도 그걸 인정한다는 거지요.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독일과 같은 사회를 지향해 보자고요. 독일에는 “고등학교 나오면 벤츠타고, 대학을 나오면 골프 탄다.”는 말이 있대요. 그게 독일 사회래요. 일찍 경제 활동을 해야 더 잘 산다는 거지요.

우리가 얼마나 공부를 가지고 자녀를 노엽게 하는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공부도 능력입니다. 공부능력이 뛰어난다고 모든 게 뛰어나는 가? 그렇지 않아요. 세상은 그렇더라도 우리 교회 교인들만이라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자녀를 길러 나갈 때 우리 다음 세대에는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좀 겸손해지세요. 너무 교만해요. 우리의 경험은 벌써 20년 30년 전의 것이었는데,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화 되고 있는데...

 

두 번째로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소한 규제로 자녀를 얽어매지 말라는 거에요.

우리는 그러잖아요? 우리 아이에게 공부나 우리가 원하는 것 하나 잘못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안다고요. 디도서 2장 14절에 이렇게 말해요. 디도서 번역도 참 잘못됐는데, 이번 개정개역 보다 이전 개역성경이 훨씬 더 원어에 가깝게 번역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경의 해석을 언제나 비판하라는 거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시면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해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개정개역성경은 이렇게 되어 있어요.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자기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미예요. 그런데 원문은 또 이전 개역 성경에는 ‘선한 일을 도모하는 친 백성’이라 그랬어요. 친백성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 교회에서 여러 번 강조했는데, 우리가 어릴 때 소꼴을 먹이러 가면 쇠줄을 길게 늘어뜨려 놓고 말뚝에 고정 시켜놔요. 그러면 그 고삐 매인 쇠줄 안에서 소가 자유롭게 꼴을 뜯어 먹어요. 토끼풀 먹든지, 독초를 먹든지, 그건 소가 알아서 하는 거요. 친 백성이라는 말이 그런 말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유롭게 살도록 창조했어요.

 

어릴 때 제 아버지는 부산에서 목회를 했기 때문에 너무나 사소한 걸 가지고 규제를 많이 했어요. 영화를 보면 지옥 가는 줄 알았어요. 이번 코로나 19로 우리 교회 어른들이 교회에 와서 바둑을 두면서 시간 잘 보냈는데, 제 아버지는 바둑판이나 장기판이 보이는 순간, 사탄 놀음이라고 도끼로 잘라버렸던 아버지에요. 주일에는 뭘 해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돼, 안 돼, 안 돼, 사소한 게 너무 많았어요. 그러니까 내 속에 생기는 게 뭐냐면, 죄책감이었어요. 죄책감은 굴종의 사람으로 만들고, 선악의 판단에 대한 능력이 없어지게 해요. 그래서 독일은 죄책감을 가지는 교육을 하지 않도록 성교육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성교육이 정치교육이래요.

저는 언제부터 진짜 신앙이 됐나? 제가 성경을 보는데 진짜 깜짝 놀란 것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악과를 따 먹을 자유까지 주셨더라고요.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자유까지 주셨더라고요. 물론 죄를 짓도록만 했는가? 죄를 짓고 난 뒤에 복음을 통해서 죄를 의식하게 했어요.

죄책감은 타인의 규정에 의해서 생기는 거지만, 죄의식은 자기의 깨달음 속에 생기는 거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죄책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종교적 권위를 가지는 목사는 아닌 거 같아요. 교인들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도, 교인들이 말도 잘 안 들어도 여러분들에게 죄의식을 주려고 하였지 죄책감을 가지게 하지는 않아요. 이런 교육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때가 돼야 돼요.

인문학적으로 그러잖아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소한 규정으로 얽어매는 것은 자녀에게 실패하지 마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성공이 안 일어나는 거야. 창의가 없는 겁니다. 왜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못 타는가? 부모들 탓이지요. 세부적인 것까지 다 규정해요. 그거 유대교 아닙니까? 그게 탈무드고 그게 미쉬나 아니에요? 성경의 규정은 굉장히 광범위해요. 하나밖에 없어요.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그 하나의 범위 안에서 자유로운 선택, 때로는 죄도 지어 보고???

 

우리가 사소한 규정을 하는 이유는, 공부 성적이 좀 떨어지면 아이의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자기 생각이지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거에요. 제가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 합니다. 인간들이 회는 자연산을 좋아하면서 애는 양식으로 키우려고 하기 때문에 애들이 비실비실 하다고, 맛도 없는 인생을 산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때로는 상처도 받아보고, 져보기도 하고, 실패도 하고... 그래야 성공하지요. 누가 그럴 수 있어요? 겸손한 부모지요. 자기의 경험, 실패한 경험도 절대하지 않고, 성공한 경험도 절대화 하지 않는 부모가 겸손한 부모이지요. 우리가 공부 하나 때문에 모든 것에서 사소한 규정을 하잖아요? 부모들의 규정이 뭐냐면, 공부에 방해되는 것들은 다 짜르잖아요.

왜 우리가 사소한 규정으로 얽어매지 않아야 되는 가? 내가 보고 경험한 것에 의하면, 짧은 경험에 의하면, 성공하고 건강한 사람은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존감은 자그마한 성공에 자만하지도 않고, 자그마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사소한 규정으로 얽어매니까 아이들이 전부 자존감이 떨어지는 겁니다. 우리나라 어느 심리학자가 이야기하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을 보려면 관악산 밑에 가보라고, 관악산 밑에 다 모여 있다고 해요. 공부에는 우월의식을 가지나 다른 부분에는 전부 자존감이 낮다고 그래요. 그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지도층이 되니까 문제지요. 이번에도 고시패스 한 40 몇 명이나 국회의원이 되니까, 건강한 사회가 안 되는 겁니다. 왜 젊은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지 않습니까? 법을 잘못 만들면 나라가 큰일 난다는 거지요. 큰일 날지, 안 날지 어떻게 알아요?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는 세계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하고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데... 코로나 19에 한 가정에 100만 원씩 주는 이런 나라, 이런 세계가 펼쳐지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 봤어요?

오늘도 여러분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겸손해야 돼요. 우리나라를 한번 보세요. 좌파, 우파, 이념으로 자기의 경험을 절대시해서 보편화시켜 버린다고요. 그러면 공산화되고 그러면 나라 망하고... 이러면 뭐 어떻게 되고 저쩌고 하지만 그렇게 안 되잖아요.

오늘도 우리가 자녀들에게 정말 좋은 세상을 물려주려면, 부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키려고 하지 말고요. 자녀가 원하는 게 뭔지를 살펴야 돼요. 부모가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려고 하지 말고요, 성경의 유익성을 알아야 돼요.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하잖아요.

 

세 번째로 편애하지 말아야 된다고 했지요. 어디에서 편애가 나와요? 비교와 경쟁에서 나와요. 독일은 비교하고 경쟁하는 교육을 제일 나쁘게 본대요. 파쇼교육이라고 그러네요. 강자만 살아남는... 우리나라가 지금 그런 파쇼 교육이지요. 히틀러 교육이지요. 독일에는 시험이 있기는 있는데 시험 날짜를 안 가르쳐 준대요. 날짜를 가르쳐 주면 부모가 자녀들을 닦달하기 때문에 안 가르쳐 준대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공부가 자기 실력이 되는 거지요. 우리는 날짜를 아니까, 벼락치기 공부를 해요. 그래서 암기력이 뛰어난 아이가 성적이 좋고, 시험을 치고 나오면서 싹 잊어버리잖아요. 우리의 지식이 하나도 우리의 삶이 되지 못하잖습니까?

성경은 비교하고 경쟁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도 보면 교인끼리 얼마나 경쟁시키고 비교해요? 여러분들 우리 교회가 편한 게 뭐예요? 제가 돈이 없는 사람에게 헌금소리를 안 해요.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시간 이야기 안 해요. 각자 자기에게 주신 은혜의 분량대로 섬기라는 거지요. 어느 것이 더 귀하고 덜 귀하고가 없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복음이에요.

여러분들이 김누리 교수의 강의를 다 안 들을 거 같아서, 제가 잔소리 삼아 할게요. 독일에도 의사가 되는 것은 인기가 있대요. 그런데 독일에서 의사 되는 것을 선별하려고 할 때에, 학업성적은 20% 밖에 안 본대요. 무슨 배점이 큰가? 대기 성적이라네요. 1년 기다린 것보다 2년, 3년 기다리면 배점이 커대요. 기다릴수록 배점이 커서 3년을 기다리면 누구나 의대에 다 들어간대요.

우리가 좀 심각하게 생각해야 돼요.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집을 사 주려고 하고, 좋은 거 사 주려고 해요. 전부 부모 자기가 원하는 거예요. 자기가 생각할 때 유익한 걸 주려고 한다고요. 이미 우리가 고생해서 그 바탕은 만들어 놔 놓고 있으면서... 우리 다음 세대는 우리가 만든 바탕 위에 어떤 것이 좋은 것인가? 생각해야 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교회마저도 교인끼리 경쟁을 얼마나 시킵니까? 보험회사같이 교회에서 구역마다 그래프를 그려 놓고... 그런 교회가 다 성장하지요. 성장은 하지만 교인은 행복하지 않아요. 이 말 깊이 가지세요.

성경은 자녀가 원하는 것을 주려고 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유익한 것을 주려고 할 때 좋은 세상을 선물로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누가 그럴 수 있는가? 하나님을 믿어야지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뭐냐면, 내 경험이 절대가 아니라는 것에서 부터 하나님이 믿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전부 자기의 경험, 자기가 본 걸 가지고 절대시해서 얼마나 판단해요? 그러면서도 회개한다고 입에 오르내리고 하는데, 그러면 나는 머리가 아파요.

 

그리고 유익한 것은 주의 교양과 훈계라 그랬어요. 교양은 말로 하는 교육이고 훈계는 행동으로 하는 교육이에요. 그런데 교육만 머릿속에 있지, 주의 교양과 훈계가 빠져 있어요. 주의 교양과 훈계가 뭡니까? 사소한 규정 613가지 탈무드의 그 많은 규정을 딱 하나로 묶어요. 아이들에게 뭘 본을 보여 주고, 뭘 말해야 되는 가? 공부해라. 텔레비전 보지 마라. 게임 하지 마라. 이런 것이 아니에요. 주의 교양과 훈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거예요.

그리고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줄 아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교회에 와서 충성하고, 전도하고, 목사님 말씀을 잘 듣는 거라는 것은, 그건 목사가 하는 이야기죠.

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가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 사랑이에요. 여러분, 자녀가 부모에게 드리는 최고의 선물은, 부모를 사랑하는 게 뭐야 면, “엄마, 나를 이렇게 낳아 줘서 감사해!” 그거보다 더 부모를 사랑하는 말이 어디 있어요? 부모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 “엄마, 나 왜 이렇게 낳았어?” 아니에요? 하나님 사랑은 코로나 19에도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게 하나님 사랑이 아니에요. 자기를 사랑하는 거에요.

자기를 사랑하려면 사회적인 통념이 무너져야 되지요. 그거 깨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는 규범이 너무 많아요. 여러분, 그 규범을 깨는 게 뭐예요? 예수 믿고 이런 자유가 여러분들 속에 있어야 돼요. 우리 사회에서 남자의 키는 175cm 이상이 돼야 되고, 여자의 외모는 이래야 되고... 전부 사회가 만들어 낸 죄악 된 규정들이잖아요? 저는 미국을 닮아서는 안 된다고 그러는데, 이것 하나는 닮으세요. 미국에 가면 금기사항 3가지가 있잖아요. 외모, 출신학교, 고향이잖아요. 미국에서는 외모로 가지고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되잖아요. 미국에 한번 가 보세요. 흑인들 여자들 배가 툭 튀어 나왔는데도 배꼽티를 입고 잘 다녀요. 생긴 거 가지고 사람을 판단 안 하거든요. 왜 하나님이 주신 거니까. 우리는 키가 크면 전봇대, 작으면 뭐 땅딸이... 이런 거 다 무너져야 되요. 제가 그런 이야기하잖아요. 키가 작은 사람을 하늘에서 재면 네가 더 크다고, 꼭 키를 땅에서 재야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오늘도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들의 외모라든지 여러분들의 삶의 모습이라든지 이런 것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잖아요.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공부 못하는 게 부모 탓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해 준 건데, 공부 못하는 자신을 사랑하도록 해 줘야지.

주의 교훈과 훈계는 종교적인 것이나 사회적인 규범이나 윤리적인 부분도 아니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라는 것이에요.

독일은 학교 교과 과목에 행복이라는 과목이 있대요. 행복하려고 공부하는 것이고, 성공도 행복하려고 성공하려고 하는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성공 안 해도 행복한 사람은 성공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냐면, 우리를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그랬어요.

오늘 여러분들의 자녀를 있는 모습 그대로 자기를 사랑하도록 해 줘요. 그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겁니다. 그래야 자녀가 행복한 거예요. 우리는 그런 사회를 위해서 우리가 희생해 온 거예요. 우리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서 우리 자녀들에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도록, 그런 사회를 물려주려고 우리가 희생 했잖아요.

인문학 책을 목사들도 좀 읽어야 되요. 2002년도 월드컵 때 대한민국의 열정에 반해서 우리나라에 남아 있었던 옥스포드 출신의 특파원, 다니엘 투드가 쓴 책,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읽어봐야 해요. 우리는 기적적으로 성공하였지만 기쁨은 없다는 것에요.

오늘 이 설교가 뭡니까? 우리는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너무나 희생 했잖아요. 이제는 기쁨을 찾자는 겁니다. 행복해지자는 겁니다. 김누리 교수도 강의를 하면서 인용한 말이 외국 교수가 우리 한국을 규정할 때에 일상의 사막화라고 규정한대요.

우리는 안에 있기 때문에 못 느껴요. 밖에 있는 사람이 더 정확하게 느껴요. 우리가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사람은 몰라서 그렇다고 하지 마세요. 우리가 못 보는 걸 보는 것이 밖에 있는 사람의 눈이에요. 그게 겸손한 사람이에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안의 생각 때문에 여러분들은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은 자기는 다 안다고 생각해요.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보라고, 설교에 비추어서 보라고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이야기하는 가하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지 마세요. 들어야 할 말을 들으세요. 설교는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능력에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말고, 사소한 규정으로 얽어매지 말고, 경쟁하거나 비교하지 않아 편애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도록 행복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가족 이야기는 죄송한데, 우리 대열이가 용인대학교를 나왔어요. 제가 공부라는 잣대를 한 번도 안 드려 댔거든요. 몸이 좋아서 몸 좋은 거 가지고 잣대를 드려 대니까,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졌잖아요. 공부 때문에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진 아이였는데, 자존감이 높아지니까, 대학 가더니만 용인대학교를 가서도 자기가 대한항공에 들어가려고 꿈을 꾼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자기 친구들은 전부 좌절감으로 노는데 얘는 M.T도 안 가고 4년 동안 대한항공에 들어갈 준비를 해가지고 들어가더라고요. 자존감이 높아서 그런 거요. 자신을 사랑하게 하세요. 그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요.

 

두 번째 왜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줄 아세요? 이웃을 사랑해야 행복한 사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만 행복하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에요. 행복한 사회에서 행복한 자아가 있어야 돼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그래야 행복한 교회가 되기 때문이에요. 자기만 사랑하면 행복한 교회가 되지 못해요. 우리나라에는 자기만 사랑하는 교인들이 많아요. 그래서 국가나 교회는 행복한 교회와 국가가 안 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요. 그걸 외부의 눈에서 우리를 평가할 때 뭐라는 줄 아세요? 극도의 개인주의라는 거예요. 우리 자녀들에게 얼마나 극도의 개인주의를 강요해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우리 교회에서는 꾼밤 꿀밤 같은 것 하잖아요. 행복한 교회와 사회를 만들려고 그러는 거에요.

방청객 중에 누가 김누리 교수에게 질문을 하더라고요. 독일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좀 이야기 해 달라고 하니까, 안 그래도 자기가 독일을 갔는데, 열차를 타고 가는데 엄마하고 아이가 있어서 물었대요? 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한 불만이 없느냐고 아이에게 물으니 아이가 행복하다고 하더래요, 엄마에게도 물었는데 엄마가 한참을 고민하더니만 하는 이야기가 없다. 이러더래요.

우리가 일본과 같은 사회를 자녀에게 주려 하지 말고, 독일과 같은 국가를 물려주려고 해야 해요.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도 잘못 할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 우리가 잘못 살아 왔어요. 그러나 이제는 이 말씀 앞에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 설교 이전의 여러분들과 이후의 여러분들은 달라져야 되지 않겠어요? 우리교회에 다니면서 여러분들 스스로를 사랑하세요.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되세요. 이젠 한 걸음 더 나가서 타인도 사랑하세요. 그래야 진정한 행복한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기주의로 개인주의로 자녀들을 가르쳤어요? 저는 죄의 근본은 이기라 그래요. 교회에서도 자기 자녀만 자기 가정만 아는 것은 신앙생활 잘하는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가정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가정도 소중하게 생각할 때 자신의 가정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걸 아셔야 돼요.

우리가 행복해 지려면 행복한 교회, 행복한 사회가 되어야 해요. 이웃을 사랑하면 행복한 사회가 되요. 제가 우리 교회의 존재 이유를 그러잖아요.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헌금 내라 소리 안 하잖아요. 봉사하라고도 제가 말 안 하잖아요. 죄책감을 안 주잖아요. 스스로 깨닫게 죄의식을 가지도록 설교하잖아요.

 

정리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자녀에게 주려고 하지 말고, 자녀가 원하는 것이 뭔지 살피세요. 내가 생각하는 유익한 것을 주려고 하지 말고, 성경이 유익하다고 하는 것을 자녀에게 주려고 해야 돼요. 그래야지 아이들에게 훨씬 더 좋은 세상을 선물로 줄 수 있고요. 이런 가치관의 경험에서 자란 우리의 자녀들이 그의 자녀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현명한 부모가 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항하세요. 비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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